BLOG ARTICLE Pooongkyung | 82 ARTICLE FOUND

  1. 2011.06.24 고속터미널에서 사가정까지.
  2. 2011.06.20 잊혀지는.
  3. 2011.06.16 더럽고 치사해서. 4


고속터미널에서 집으로 가려면 지하철 7호선으로 열두정거장을 지나야 한다. 마냥 서서 지나기엔 언제나 조금은 부담스러워서, 지하철에 타는대로 중간에 내릴 법한 사람을 애써 찾아 그 앞에 서곤 한다. 오늘은 우산고리를 꼭 잡고 있는 회사원 아저씨 앞에 섰는데, 끝까지 가고보니 이 아저씨 나보다 먼 곳 가는 사람이더라. 그 사이 사람들은 밀려 들어와 앞뒤고 옆이고 꽉 차들어, 나는 손잡이에 매달려 쏟아지는 잠을 생각들을 받아내고 있었는데.

어느새 내 오른편에 서 있던 아이들 둘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옆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눈 앞까지 내려온 이 아이들은 아마도 커플인 것 같다. 다정하게 귓속말을 주고 받는 것 하며, 둘이 주고 받는 깊은 눈빛, 그러니까 주변에 다른 누가 있든 그곳이 어디든 내 눈에는 당신밖에 안 보인다는 그 하염없는 눈빛, 뜨거운 입술처럼 포개어진 두 손. 그러니까, 이 둘은, 스무살을 갓 넘긴 것 같은 앳된 얼굴의,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배시시 웃는 아이와, 그녀를 따라 함빡 미소를 지으며 분주하게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무테 안경 여자아이는, 다시 말해 이 두 여자아이들은 연인인 것이다. 사랑을 하는.

아. 사랑 참 예쁘다. 사랑은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반짝거리는구나. 이렇게 은은하게, 이렇게 가만가만히, 이렇게 또 열렬하게. 연둣빛 설레며 피어나는 사랑이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자꾸자꾸 입가에 번지던 미소를 그들은 알까.

손을 잡을 줄 몰라서 잡지 않는 것이 아님을, 이마에 흐르는 머리칼을 못 봐서 쓸어넘기지 않음이 아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님을. 그 사람이 어렴풋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사랑은 여전히 나를 웃게 하고 기다리게 하고 슬프게 하니까, 나는 그것을 잃은 것도 잊은 것도 아니라 다만 아끼고 있으니까.

역 밖에 비는 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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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는.

Pooongkyung 2011. 6. 20. 05:34

다시 익숙한 거리 어디쯤에서 길을 잃었다. 나의 꿈의 세계는 대개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자랐던 익숙한 전농 4동 골목길에서부터 시립대 정류장 앞까지의 길은 분명하고 뚜렷하게, 그리고 그곳을 벗어나서는 근거리의 기억과 원거리의 추억이 버무려져 알 수 없는 길들을 멋대로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그 동네에서는 버스와 지하철이 정말 중요한 교통수단인데, 그것을 타고 움직이다 보면 대개 익숙한 길에서 시작해 낯선 거리에서 끝나곤 한다.

낯선 그 어느 거리에서 또다시 나는 버려졌다. 익숙한 거리로 돌아오는 길은 더할나위 없이 쓸쓸하고, 하필이면 같은 사람에게 거듭해서 버려졌다는 게 믿을 수 없어 기가 막혔다. 뭐라고라도 한마디 하고 싶어서, 내가 버려진 그곳을 그 사람이 남은 그곳을 다시 찾아가려고 재차 눈을 감았다. 쪽잠에 들때마다 나는 재수 좋게도 익숙한 거리로 그 버스 정류장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정류장 앞에서 튀김을 파는 500냥 분식 할머니는 아까도 꽤 아까도 지금도 분주히 손을 놀리지만, 나는 어느 버스를 타야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을지를 몰라 매번 허둥댔다. 내가 가려는 곳이 그곳인지조차 의심스러워 어느 버스는 흘려 보냈다. 그와중에 난생 처음 보는 3517번 버스를 타면 어디를 가려나 하고 궁금해 하기도 하고.

아무튼, 그 익숙한 거리 어디쯤에서 나는 또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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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먹고 살겠다. 기필코 그렇게 만들겠다. 내가 원하지도 않고 실체 없는 말장난과 짐짓 심각한 권력투쟁에, 과정도 결과도 형편없이 따분한 일에 시간을 소모하는 일은 앞으로 남은 1년이면 충분하다. 이런 일에 화내는 것도 애써 무시하는 것도 귀찮다. 어느 정도는 나를 포기함으로써, 고장난 이 시간을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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