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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14 나의 사회학에는.
  2. 2012.04.11 4월 11일 오전.
  3. 2012.04.06 내 출석번호는 16번이었다.

나의 사회학에는.

Pooongkyung 2012. 12. 14. 23:23


강연을 듣는 내내 네 생각이 났다. 강연 제목은 '나의 사회학 생각'이었는데, 들으며, 자연스럽게 청자인 '나'의 사회학으로 생각이 옮겨지고, 그리고 네 생각을 했다. 나를 이 낯선 땅으로 데려온 네 생각을 한참 했다. 네가 내 옆자리에서, 또는 앞자리에서 함께 강연을 듣는 상상을 했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드는 네 모습을 그려보았다. 모든 사람이 빠져 나간 뒤 빈 강의실에 멍한 얼굴로 남은 너를, 그리고 나를 그려보았다. 그건 아주 어색한 그림은 아니었는데,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익숙한 그림이 될 수가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으니까. 그저 캄캄히 네 이름을 불러보았다. 나의 사회학에는 언제나 네가 있을 테니까, 언젠가 먼 훗날에 나는 네 이름을 조금은 더 큰 목소리로 부를 수 있을 테니까. 조금은 덜 외로워 해야 한다, 친구야. 나의 사회학에는 언제나 네가 있을 테니까. 조금은 덜 외로워 해야겠지, 나의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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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오전.

Pooongkyung 2012. 4. 11. 10:51

오늘은 한국 사회에서 국가의 정당한 권위의 회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날인데, 들려오는 건 암울한 이야기 뿐이다. 투표율이 예상보다 훨씬 낮다고 한다.

어느 정당이 집권하느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번 선거는 특히 공적 문제를 공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이 공동체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가늠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한국사회는 공동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부끄럽게도, 공적 영역에 특정한 개인 또는 집단의 사익이 개입하는 것을, 국가의 이름으로 때론 가족의 이름으로 용납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 한국문화 코드 저변에는, 공적인 방법으로는 하다하다 안 되어서 공적문제를 사적으로 해결하려는 개인의 시도가 깊숙이 깔려있다. 윤종빈의 "범죄와의 전쟁", 강풀의 "26년"을 보라. 정당성을 결여한 국가에 대한 일상적이고, 직접적인 분노가 따갑게 드러나 있다. 차라리 사적 해결이라도 해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이 엄습한다.

그러나 공적 문제는 공적인 장에서 공적인 절차를 통해 풀어야 한다. 그게 원칙이다. 공적 문제의 사적 해결이 지속되는 이상, 누가 집권하고 말고를 떠나서 이 땅에 공동체란 허울뿐인 이름으로 존재할 것이다. 투표는 가장 직관적인 공적 문제 해결의 장인데, 투표율이 이처럼 저조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그 답을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부디, 상상에서만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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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과 3학년 때 내 출석번호는 16번이었다. 출석번호는 이름 순서 아니면 키 순서로 정해졌는데, 성은 박이고 키도 애매하게 크다 만 나는 이름과 키 어느 쪽으로 하든 반에서 중간 쯤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첫번째 16번이었을 때, 그러니까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 때의 영어 성적은 전교에서도 밑바닥인 60점대였다. 중학교 선생님이었던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는 ABC 알파벳만 알면 된다고, 그 흔한 윤선생 영어도 민병철 어학원도 보내지 않았다. 친구들보다 먼저 배우는 반칙하지 말라고, 중학교 3년 내내 학원도 보내지 않았다. 이른바 직구의 시대, 맨땅에 헤딩했던 그 때의 나는 세상이 참 버겁기만 하다고 생각했다.

두번째 16번이었을 때,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에 몇장이라도 말도 안되는 글이라도 끄적이면서, 흐릿하기만 했던 나를 가다듬어 갔다. 그 때 싸이월드가 활성화 되어 있었다면, 나는 장근석 못지 않은 중2병 샘플로 회자되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서툴렀지만, 다소 자아에 침잠되어 있었지만, 조금씩 나는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엔가, 교복이 유난히 몸에 꽉 끼인다고 느껴졌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다시는, 16번이 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16번이었던 시절은, 언제나 서툴렀지만 독고다이 세상에 나밖에 없을 거라는 망상을 짊어지고 있었지만, 그 시절을 거치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아마도, 이 세상 누구에게나 16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언젠가 한번쯤은 16번이었던 우리는,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의 16번 시절을 각박하게 몰아치기 보다는, 한층 너그럽고 여유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보듬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되겠지만. 나는 내가 16번이었던 그 시절을 따듯하게 기억하고 있다.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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