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문태준 | 5 ARTICLE FOUND

  1. 2011.05.12 혼동.
  2. 2011.05.09 작심.
  3. 2011.05.07 눈물에 대하여.

혼동.

BookToniC 2011. 5. 12. 22:22

가을밤에 뒷마당에 서 있는데
풀벌레가 울었다
바람이 일고
시누대 댓잎들이 바람에 쓸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풀벌레 소리
댓잎 소리
또 한번은
겹쳐
서로 겹쳐서
그러나 댓잎 소리가 풀벌레 소리를 쓸어내거나
그러나 풀벌레 소리가 댓잎 소리 위에 앉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혼동이라는
그 말에
큰 오해가 있음을 알았다
혼동이라는
그 말로
나를 너무 내세웠다

- 문태준, 그늘의 발달,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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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

BookToniC 2011. 5. 9. 23:38

모든 약속은 보름 동안만 지키기로 했네
보름이 지나면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다른 데를 보듯 나는 나의 약속을 외면할 거야
나의 삶을 대질심문하는 일도 보름이면 족해
보름이 지나면
이스트로 부풀린 빵 같은 나의 질문들을 거두어 갈거야
그러면 당신은 사라지는 약속의 뒷등을 보겠지
하지만, 보름은 아주 아주 충분한 시간
보름은 나를 당신을 부드럽게 설명하는 시간
그리곤 서서히 말들이 우리들을 이별할 거야
달이 한 번 사라지는 속도로
그렇게 오래

- 문태준, 그늘의 발달,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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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에 대하여.

BookToniC 2011. 5. 7. 04:30

어디서 고부라져 있던 몸인지 모르겠다
골목을 돌아나오다 덜컥 누군가를 만난 것 같이
목하 내 얼굴을 턱 아래까지 쓸어내리는 이 큰 손바닥
나는 나에게 너는 너에게
서로서로 차마 무슨 일을 했던가
시절 없이
점점 물렁물렁해져
오늘은 더 두서가 없다
더 좋은 내일이 있다는 말은 못하겠다

- 문태준, 그늘의 발달,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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