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Pooongkyung | 82 ARTICLE FOUND

  1. 2011.05.16 Eurysteus.
  2. 2011.05.12 꿈.
  3. 2011.05.11 가슴이.

Eurysteus.

Pooongkyung 2011. 5. 16. 22:29


에우리스테우스, 단지 헤라클레스의 열두가지 과업 때문에 신화에 등장한 가련하고, 멍청한 왕.
미천하고 불미스러운 자여, 그대는 오직 나의 왕이 되기 위해 태어났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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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Pooongkyung 2011. 5. 12. 03:31

아침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밝은 목소리였다. 두어마디 나누다가, 머뭇거리는 것 같아서 "너 아직 출근 안 했구나" "응. 엄마가 불러." 그리곤 그 사람은 '내가 나중에 전화 할께', 하고 끊었다. 그 사람 그대로여서, 황당하면서도 다행이라고 느꼈다. 생생해서, 눈을 뜨자마자 곤히 잠들어 있던 핸드폰을 더듬어 통화내역을 확인해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번 주말에 올라오냐는, 이틀 전에 받은 후배의 문자, 초파일 시간외 근무를 찍어달라던 실장의 전화가 최신이었다.

그렇게 눈을 뜨자 다시 잠이 들기 어려웠다. 불을 켜자, 방바닥에는 작년 여름 숙소에 개미떼처럼 창궐했던, 노래기가 꾸물거리며 기타 옆을 지나고 있었다. 어느새,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처럼 경고 없이, 일상처럼, 작고 꼬물거리며, 부끄러움 없이 내 앞에 나타날 계절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때마다 휴지를 풀어 지그시 눌러주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들의 고향에 락스를 뿌리거나 소독약을 퍼붓거나, 군홧발로 짓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등장은 봄이 가고 여름이 찾아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그 계절을 봄처럼 맞이하는 수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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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Pooongkyung 2011. 5. 11. 21:42

퇴근 한시간을 앞두고서였다. 갑자기 명치 끝부터 목구멍까지 걸레짜내듯 조여오며 아팠다. 비틀거리다가 자리에 앉아서 숨을 고르기를 몇분. 숨을 들이마시고 침을 삼키는 것도 버거웠다. 옆에 있던 선임이 뭐라고 하는 것도, 웅웅거릴 뿐이었다. 사무실엔 나와 선임뿐이었다. 선임도 나도, 나를 방치하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분명히 조금 뒤면 지나갈 고통이겠거니 했던 게, 참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더라. 그 짧은 시간에 식은땀에 젖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눈동자도 국수발처럼 풀렸다. 다만 느닷없이 찾아온 고통처럼, 사라지는 것도 순간이어서, 언젠가부턴 잔통이 남아 있는 가슴을 움켜쥐고 허허로이 웃을 뿐이었다. 이래서는 어디에 이 고통을 호소하고, 진료받고, 치료할 길도 없지 않나. 그 사이에 사무실에는 다시 사람들이 들어오고, 그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잔무를 불평하고, 스포츠 신문을 읽고, 퇴근 후 한우전문식당에서의 회식을 떠들썩하게 준비했다. 

이 아픔도 쉽게 잊혀지리라.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쌓여지겠지. 요전에 삐끗한 뒤 계단을 어렵게 오르게 된 무릎도 그렇고, 연이어 야근을 하다보면 습관처럼 수시로 찾아오는 다래끼에, 오늘 가슴까지. 난 늘 내가 건강하다고 믿었는데, 요즘대로라면 솔직히 좀 걱정되긴 한다.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모르게 찾아오기 전에, 쌓여진 고통들을 때우고 고치고 달래야겠는데, 나는 여전히 언제 내가 쉬어가야 하고, 언제 다시 일어서야 하는지 타이밍을 잘 못 잡겠다. 요즘은 공부도 잘 되고, 그 외 지지부진했던 것들이 명료하게 정리되는 터라, 더욱더 몸을 돌볼 겨를이 없어서, 멈추고 싶지 않지만 지난 한 달간 내 몸이 내게 보낸 경고는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고 명료하다. 멈추라는 거지.

돌아갈 곳이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나는 내 쉴 곳을 등에 지고 움직이는 달팽이. 도무지 멈출 수가 없다. 오늘같은 일이 더러만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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