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터미널에서 집으로 가려면 지하철 7호선으로 열두정거장을 지나야 한다. 마냥 서서 지나기엔 언제나 조금은 부담스러워서, 지하철에 타는대로 중간에 내릴 법한 사람을 애써 찾아 그 앞에 서곤 한다. 오늘은 우산고리를 꼭 잡고 있는 회사원 아저씨 앞에 섰는데, 끝까지 가고보니 이 아저씨 나보다 먼 곳 가는 사람이더라. 그 사이 사람들은 밀려 들어와 앞뒤고 옆이고 꽉 차들어, 나는 손잡이에 매달려 쏟아지는 잠을 생각들을 받아내고 있었는데.

어느새 내 오른편에 서 있던 아이들 둘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옆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눈 앞까지 내려온 이 아이들은 아마도 커플인 것 같다. 다정하게 귓속말을 주고 받는 것 하며, 둘이 주고 받는 깊은 눈빛, 그러니까 주변에 다른 누가 있든 그곳이 어디든 내 눈에는 당신밖에 안 보인다는 그 하염없는 눈빛, 뜨거운 입술처럼 포개어진 두 손. 그러니까, 이 둘은, 스무살을 갓 넘긴 것 같은 앳된 얼굴의,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배시시 웃는 아이와, 그녀를 따라 함빡 미소를 지으며 분주하게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무테 안경 여자아이는, 다시 말해 이 두 여자아이들은 연인인 것이다. 사랑을 하는.

아. 사랑 참 예쁘다. 사랑은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반짝거리는구나. 이렇게 은은하게, 이렇게 가만가만히, 이렇게 또 열렬하게. 연둣빛 설레며 피어나는 사랑이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자꾸자꾸 입가에 번지던 미소를 그들은 알까.

손을 잡을 줄 몰라서 잡지 않는 것이 아님을, 이마에 흐르는 머리칼을 못 봐서 쓸어넘기지 않음이 아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님을. 그 사람이 어렴풋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사랑은 여전히 나를 웃게 하고 기다리게 하고 슬프게 하니까, 나는 그것을 잃은 것도 잊은 것도 아니라 다만 아끼고 있으니까.

역 밖에 비는 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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