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다가, 문득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라 먹먹해졌다. 이 세상은 단정한 운율과 아름다운 시어로 채워져 있는 서정시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내 옆에서, 또는 내게서 일어나는 비겁하고 처참한 일들 앞에서, 진실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갈망은 커지기 마련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아름다움이, 더러운 현실을 만났을 때. 아름다움은 사뿐히 그 현실을 즈려밟는 대신, 망신창이가 된 현실을 꼭 껴안아야 하지 않을까. 아파도. 상식적인 윤리를 외면하는 학문과, 정치에게 찬물을 끼얹어야 한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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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06 아름다움에게.
- 2012.01.03 부치지 않은 편지.
- 2011.09.08 오디션 프로그램에 반대합니다.
오늘 그는 전태일, 조영래와 함께 남양주 모란공원에 영원히 잠들었다. 사실 그에 대해 내가 가진 기억은, 안개처럼 뿌옇고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대개, 그 기억들은 정치인들에게 있어 실패라고 여겨지는 것 뿐이다. 2002년과 2007년 대선, 18대 총선에서의 낙방.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연신 콧물을 훔치며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던. 비뚤어진 고개와 어눌한 말투. 하나하나 세어보면 어쩌면 그렇게 속터지고, 아프고, 무기력한 기억들 뿐인지. 그런 흩어진 기억들이 모여, 김근태라는 기억을 꾸린다. 부치지 않은 편지를, 아침이슬을 부를 때마다, 그는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나의 아비가 있었다. 그보다 한 살 아래인 나의 아비는, 그처럼 그 시대에 깊은 상처를 입은 이였다. 남영동을 출간한 출판사에 나의 아비가 있었다. 아비는 평생동안 책을 팔았으나, 책으로 돈도 이름도 사람도 남기지 못했다. 그의 이름은 자주, 가려져 있었으며, 그의 삶은, 자주, 동지라는 이름의 타인들에게 난도질 당했다. 그래도 그는 살아 있고, 오직 살아 있음으로 그의 삶의 무게와 가치를 지켜내고 있다. 내가 아비를 원망하나 원망하지 않듯이, 동정하나 동정하지 않듯이, 또한 그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갖는 애착은, 나의 아비에게 갖는 애착과 아주 가깝다. 나의 아비가, 생물학적 시간을 멈춘다 하여 내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듯이, 그 역시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있는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매우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난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왜 그리 기를 쓰고 그런 프로그램을 만드는지…. 그냥 매일매일 만들어지는 졸작들, 만들고 좌절하는 음악, 실망스러운 문학작품, 그림들… 그게 다 그 자체로 예쁜 거거든요. 그걸 되지도 않는 잣대로, 박수소리 하나만 갖고 잣대를 매겨서 누굴 상 주고 떨어뜨리고. 그런 걸 즐기는 사람들의 잔인한 속성을 부추겨서 장사를 해먹는 건 나는 반대입니다.
잘하는 애 칭찬하지 말라는 것에도 배치될 뿐 아니라 진짜 음악·예술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즐거움을 상품화하는 거니까요.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그린 그림을 봐봐요. 어마어마하게 이쁩니다. 우리 어렸을 때 되는 대로 엄마·아빠 얼굴 그려놓고 여기 초록색을 칠해도 될지 불안해하다가 칠하고 나서 좋아하고 이런 기억들 있잖아요. 왜 그런 건 다 잊어버리고 점점 바보가 되는 건지, 사랑도 하고 배려도 하면서 자랄수록 아름다워져야 하는데 바보 같은 어른들 때문에 청춘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 김창완, 한겨레신문 청춘상담앱 9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