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답답할 뿐이다. 자세한 내용을 쓰기엔 지금 내가 처한 환경이 허락하지 않으니, 그저 마음에 담는다. 다만 어제는 10시가 가까워서야 업무가 다 끝났고, 업무를 마친 잔여감은 끈끈한 참담함이었다. 의심하는 자를 저격해야 하는 의심받는 자의 입장이라니. 그걸 신나서 하는 누구라니, 결연한 표정으로 있는 힘껏 일을 넘기는 누구라니. 그런 일을 억지로 손에 잡고 있다보니 다시 오른쪽 눈꺼풀에 경련이 오고 왼쪽 가슴이 저릿했다. 정말이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훈련단에서 밥먹듯이 입에 담던 말이었다. 매일 아침 퉁명한 기상음악에 눈을 뜰 때마다, 엎어지는 동기의 군홧발에 뻗은 손가락이 짓이겨질 때마다, 성당에서 한 사람당 두 개씩 나눠주는 오예스 한 봉지를 남몰래 더 챙긴 동기와 눈이 마주쳤을 때마다. 그러니까 대개 무표정이었을 때나, 가끔 의미 없이 웃을 때나, 그보다 더 가끔 눈물을 빼낼 때나, 언제나, 나는 그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또한 지나가려나. 그러나 지나가는 시간은 그냥 가지 않는다. 지나가는 것만은 문제가 아니다. 나는 뚜렷이 기억하는데, 훈련단은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도 조직을 유지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남을 죽여야 함을 삶의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몸으로 강제로 내게 납득시켰던 것이다. 저항을 한치도 허락하지 않는 그 곳에서, 나는 저항을 상처를 희망을 안으로 들이미는 법을 배웠다. 그 늪에서 빠져나오는데 한참이 걸렸다. 그런데,
다시 또 그곳이라니.
오도카니, 창백한 불빛이 스러지는 숙소 가로등 어귀에 쭈그려 앉아 한참을, 풀벌레 소리와 벗해도 서글픔을 덜어낼 수 없었다. 그 또한 지나갔지만.
연구원님은 마지막 남은 피자 조각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말을 이었다.
첫 아이를 받아 본 순간, 내 머리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 아이가 내 아이일까, 였어요. 자책했죠. 그 사람이 그러지 않았을 거란걸 알면서도,
전 그 생각에 한참 동안 빠져 있었어요. 나쁜 놈 같죠. 그런데 나중에 친구들이랑 얘기해보니까,
그 애들도 그랬다는 거예요. 제가 특별한 게 아니었어요. 그런 생각,
아이 있는 남자라면 다들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가요.
그럼요. 그리고 임신을 하잖아요. 출산 후까지 따지면, 1년 동안 관계를 못 가진다구요.
그걸 참을 수 있는 남자가 얼마나 될까요? 90%는 딴 길로 샌다고요. 딴 길로 새지 않은 친구가,
없더라고요. 부인 있는 남자라면, 다들 하고 있더라고요.
아.
성욕과 감정이란 게 그렇잖아요. 그걸 누가 막을 수 있겠어요. 얼마나 잘 속이냐, 없는 것처럼, 없었던 것처럼, 그게 문제지. 나이 들면서 느끼고 있는 거 아니에요?
아,
그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