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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7.04 메타포를 가지고 희롱을 하면 안 된다.
  2. 2013.07.02 몰약처럼 비는 내리고.
  3. 2013.06.05 밤이면 쥐들도 잠을 잔다. (2)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 곁에서 잤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직도 그의 손을 잡고 있는 테레사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밤새 그렇게 손을 잡고 있었던 걸까? 그는 그것이 도저히 믿지기 않았다.
 잠든 그녀는 깊은 숨을 내쉬며 그의 손을 잡고 있었고(단단히 잡아서 그 얽매임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엄청나게 무거운 트렁크가 침대 곁에 놓여 있었다.
 그녀를 깨울까 두려워 그는 그 얽매임에서 차마 손을 빼지 못하고 그녀를 자세히 보기 위해 아주 조심스럽게 돌아누웠다. 이번에도 역시 테레사는 송진으로 방수된 바구니에 넣어 강물에 버려진 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가 담긴 바구니를 난폭한 강물에 띄워 보낼 수 있다니! 파라오의 딸이 어린 모세가 담긴 바구니를 강물에서 건져내지 않았다면 구약성서도 없었을 테고, 그러면 우리 문명이 어찌되었을까! 수많은 고대신화의 도입부에는 버려진 아기를 구하는 누군가가 있다. 폴리보스가 아기 오이디푸스를 줍지 않았다면, 소포클레스는 그의 가장 아름다운 비극도 쓰지 않았을 것을!
 그 당시 토마스는 메타포란 위험한 어떤 것임을 몰랐다. 메타포를 가지고 희롱을 하면 안 된다. 사랑은 메타포가 하나만 있어도 생겨날 수 있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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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뽑힌 줄도 모르고 나는

몇줌 흙을 아직 움켜쥐고 있었구나

자꾸만 목이 말라와

화사한 꽃까지 한무더기 피웠구나

그것이 스스로를 위한 弔花인 줄도 모르고


오늘밤 무슨 몰약처럼 밤비가 내려

시들어가는 몸을 씻어내리니

달게 와닿는 빗방울마다

너무 많은 소리들이 숨쉬고 있다


내 눈에서 흘러내린 붉은 진물이

낮은 흙 속에 스며들었으니

한 삼일은 눈을 뜨고 있을 수 있겠다


저기 웅크린 채 비를 맞는 까치는

무거워지는 날개만큼 말이 없는데

그가 다시 가벼워진 깃을 털고 날아갈 무렵이면

나도 꾸벅거리며 밤길을 걸어갈 수 있겠다


고맙다, 비야. .....고맙다. .....고맙다. .....


- 나희덕, <어두워진다는 것>,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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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쥐들은 시체를 먹잖아요. 사람의 시체 말이에요. 쥐들은 그걸 먹고 살잖아요.

 누가 그러든?

 우리 선생님이요.

 그래, 넌 지금 쥐가 오는지 망보고 있구나? 사내가 물었다.

 쥐를 지키고 있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그는 매우 낮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저의 동생을 지키려고 망보고 있어요. 우리 동생이 저기 저 아래에 쓰러져 누워 있거든요. 저기 말이에요. 위르겐은 막대기로 털썩 무너져내린 담벼락을 가리켰다. 우리 집은 폭격을 맞았어요. 갑자기 지하실에서 불이 나갔지요. 그리고 동생도 사라져버렸어요. 우리는 소리쳐 불러댔죠. 동생은 나보다 훨씬 키가 작았어요. 겨우 네살이니까요. 동생은 분명히 아직도 여기 있을 거예요. 그 애는 저보다 훨씬 어렸으니까요.

 사내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말했다. 그래, 너희 선생님이 말씀해주시지 않던? 쥐들도 밤엔 잠을 잔다구 말이야.

 아니요.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셨어요. 위르겐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갑자기 지쳐 보였다. 

 허허, 그런 것도 모르면서 선생님이라니. 사내가 말했다. 쥐들도 밤엔 잠을 잔단다. 그러니 넌 밤엔 맘 놓고 집에 가도 좋아. 언제나 밤이 되면 쥐들은 잠을 자거든. 어두워지면 벌써 잠에 든단다. 

 위르겐은 막대기로 폐허 더미 속으로 작은 구멍을 팠다.

 온통 작은 쥐구멍뿐이군. 모두 작은 쥐구멍이라구.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사내가 말했다. (그때 그의 굽은 다리는 매우 불안해 보였다.) 얘야, 내가 지금 얼른 토끼에게 먹이를 주고 올게. 어두워지면, 내가 너를 데리러 오겠다. 한 마리 정도는 내가 가지고 올 수도 있어. 작은 것을 가지고 올까, 네 생각은 어때?

 위르겐은 폐허 더미 속으로 작은 구멍을 팠다. 온통 작은 토끼뿐이군요. 하얀 토끼, 짙은 회색 토끼, 연한 회색 토끼. 정말로 밤이면 쥐들이 잠을 자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낮은 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굽은 다리를 바라다보았다.

 사내는 담벼락 잔해를 넘어 도로 위로 올라갔다. 거기서 그가 말했다. 물론이야, 그런 것도 모른다면 너희 선생님은 짐이나 싸야 할 거야. 

 그때 위르겐은 일어서서 물었다. 한 마리 가져도 되나요? 하얀 것으로요?

 한번 노력해볼게. 하지만 내가 올 때까지 너는 여기서 기다려야 해. 사내는 멀어지며 그렇게 말했다. 기다려주면 너를 데리고 집에 갈 거야, 알겠니? 그래서 네 아버지에게 알려드릴 거야. 토끼집 짓는 법을 말이야. 너나 네 아버지는 그걸 알고 있어야 하니까 말이야.

 네, 기다릴게요. 위르겐이 소리쳤다. 어두워질 때까지는 더 망을 보아야 하니까요. 분명히 기다릴 거예요. 그리고 그는 계속 소리질렀다. 우리 집에는 나무 판자가 있어요. 토끼집 만들 판자 말이에요.

 그러나 사내는 벌써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는 굽은 다리로 해 쪽을 향해 뛰어가버렸기 때문이다. 저녁이라 해는 벌써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두 다리 사이로 보이던 석양을 위르겐은 아직도 볼 수 있었다. 사내의 다리는 그렇게 굽어 있었다. 그리고 바구니는 흥분하여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그 안에는 토끼 먹이가 들어 있었다. 파란 토끼 먹이, 그것은 폐허 때문에 약간 잿빛이 되어 있었다. 


- 볼프강 보르헤르트, "밤이면 쥐들도 잠을 잔다", <5월에, 5월에 뻐꾸기가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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