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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8.14 아를의 반 고흐의 방.
  2. 2011.08.08 정말 좋은 커피 한 잔.
  3. 2011.08.07 그의 사진.


새로운 구상을 하나 했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거야... 이번에는 단순히 내 침실을 그리기로 했다. 오로지 색채만으로 모든 것을 그리고, 색을 단순화시켜 방 안의 모든 물건에 장엄한 양식을 부여하려고 한다. 여기서 색채로 휴식 또는 수면을 암시할 수 있을 거야. 한마디로 말해 이 그림을 보고 두뇌와 상상력이 쉴 수 있도록 말이야.

벽은 옅은 보라색으로 하고 바닥은 붉은 타일, 나무 침대와 의자는 신선한 버터와 같은 노란색, 요와 베개는 초록빛이 도는 밝은 레몬색, 침대보는 진홍색, 창문은 초록색, 세면대는 오렌지 색이고 대야는 푸른색, 그리고 문은 라일락 색이야.

그게 전부야. 이 답답한 방 속에는 닫혀진 문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가구를 굵은 선으로 해서 다시 한번 완전한 휴식을 표현해야 해. 벽에는 초상화가 걸려 있고 거울 하나와 수건, 그리고 옷 몇 벌이 있어.

그림틀은 흰색이어야 할 테지 - 왜냐하면 그림 속에는 흰색이 하나도 없거든. 이것은 내가 어쩔 수 없이 취해야만 하는 강요된 휴식에 보복하려는 마음에서이지.

오늘 하루 종일 이 그림을 다시 그릴거야. 하지만 보다시피 이 구상은 너무 단순해. 명암과 그림자는 없애버리고 일본 판화처럼 자유롭고 평평하게 색을 칠하려고 해..

- 곰브리치,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in 서양미술사, 예경


VAN GOGH, Vincent, La Chambre de Van Gogh à Arles (Van Gogh's Room at Arles)
1889, Oil on canvas, 57 x 74 cm (22 1/2 x 29 1/3 in), Musee d'Orsay,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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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에서는 목욕하는 방식도 매우 달랐다. 나는 이틀에 한 번씩 찬물 한 양동이를 받았다. 그게 다였다. 어떤 때는 너무 차가워서 꼭 씻어야 하는 부분만 겨우 물칠을 했다. 비상수단이 하나 있긴 했다. 나는 릭샤를 타고 시내로 나가 두 개의 고급 호텔 중 한 곳에 갈 수 있었다. 호텔 여자화장실에서 20분은 족히 들여가며 더운물로 손과 얼굴을 씻고는, 더운물 목욕 외에 내가 방글라데시에 있는 동안 그리워했던 유일한 것을 탐닉했다. 정말 좋은 커피 한 잔.

호텔의 작은 카페에 앉아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기업인과 원조단체 활동가의 대화를 들으면서 카페오레를 마셨다. 그때 나는 저 수영장 가득 물이 반짝이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내 커피 한 잔이 나오려면 약 14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나처럼 몰골이 꾀죄죄한 사람이 근사한 호텔 화장실을 20분이나 쓰도록 허용한 이유는 내 피부색(백인)과 주머니 속의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카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깨끗한 물이 없어서 1년 안에 죽을지도 모르는 수십만 명의 어린이가 이런 카드를 한 장씩 갖고 있다면, 아니 집 근처에 안전한 수돗물이라도 나온다면, 이 아이들의 삶은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 Annie Leonard, The story of stuff/물건 이야기,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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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진.

BookToniC 2011. 8. 7. 10:39

그가 쏟아놓고 간 물이
마르기 위해서는 얼마간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 속의 눈동자는
변함없이 웃고 있지만 실은
남아 있는 물기를 거두어들이는 중이다
물기를 빨아들이는 그림자처럼
그의 사진은 그보다 집을 잘 지킨다
사진의 배웅을 받으며 나갔다
사진을 보며 거실에 들어서는 날들,
그 고요 속에서
겨울 열매처럼 뒤늦게 익어가는 것도 있으니
평화는 그의 사진과 함께 늙어간다
모든 파열음을 흡수한 사각의 진공 속에서
그는 아직 살고 있는가
마른 잠자리처럼 액자 속에 채집된 어느 여름날의 바닷가, 그러나
파도소리 같은 건 더이상 들리지 않는다
사진 속의 눈동자는
물기를 머금은 듯 웃고 있지만
액자 위에는 어느새 먼지가 쌓이기 시작한다
볕이 환하게 드는 아침에는 미움도
연민도 아닌 손으로 사진을 닦기도 한다
먼지가 덮으려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걸레가 닦으려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 나희덕, 야생사과,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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