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뽑힌 줄도 모르고 나는

몇줌 흙을 아직 움켜쥐고 있었구나

자꾸만 목이 말라와

화사한 꽃까지 한무더기 피웠구나

그것이 스스로를 위한 弔花인 줄도 모르고


오늘밤 무슨 몰약처럼 밤비가 내려

시들어가는 몸을 씻어내리니

달게 와닿는 빗방울마다

너무 많은 소리들이 숨쉬고 있다


내 눈에서 흘러내린 붉은 진물이

낮은 흙 속에 스며들었으니

한 삼일은 눈을 뜨고 있을 수 있겠다


저기 웅크린 채 비를 맞는 까치는

무거워지는 날개만큼 말이 없는데

그가 다시 가벼워진 깃을 털고 날아갈 무렵이면

나도 꾸벅거리며 밤길을 걸어갈 수 있겠다


고맙다, 비야. .....고맙다. .....고맙다. .....


- 나희덕, <어두워진다는 것>,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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