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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6 오래 된 정원.
  2. 2011.04.25 어지러운 발자취.
  3. 2011.02.18 나는 이제 막 살해된 것이다. 1

오래 된 정원.

BookToniC 2011. 4. 26. 22:43

나는 오래 된 정원을 하나 가지고 있지
삶을 상처라고 가르치는 정원은
밤낮없이 빛으로 낭자했어
더 이상은 아물지도 않았지
시간을 발밑에 묻고 있는 꽃나무와
이마 환하고 그림자 긴 바위돌의 인사를 보며
나는 그곳으로 들어서곤 했지 무성한
빗방울 지나갈 땐 커다란 손바닥이 정원의
어느 곳에서부턴가 자라나와 정원 위에
펼치던 것 나는 내
가슴에 숨어서 보곤 했지 왜 그랬을까
새들이 날아가면 공중엔 길이 났어
새보다 내겐 공중의 길이 더 선명했어
어디에 닿을지
별은 받침대도 없이 뜨곤 했지
내가 저 별을 보기까지
수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나는
떡갈나무의 번역으로도 읽고
강아지풀의 번역으로도 읽었지
물방울이 맺힌 걸 보면
물방울 속에서 많은 얼굴들이 보였어
빛들은 물방울을 안고 흩어지곤 했지 그러면
몸이 아프고 아픔은 침묵이 그립고
내 오래 된 정원은 침묵에 싸여
고스란히 다른 세상으로 갔지
그곳이 어디인지는 삶이 상처라고
길을 나서는 모든 아픔과 아픔의 추억과
저 녹슨 풍향계만이 알 뿐이지

- 장석남,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문학과 지성사


요 며칠간 문학에 많은 빚을 졌다. 장석남의 시가 없었더라면, 나의 삶은 적어도 당분간은 절룩거렸을 것이다. 그의 시가 조심스럽게 만들어 준 아담한 정원에서, 나는 울다가 지쳐 잠들고, 다시 일어나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지나가고 바람이 왔다 가고, 미끄러지는 물방울. 그곳에서 비로소 나는 헐거워진 내 마음을 놓아둘 수 있었다. 엄마의 품처럼 너그러웠다. 

그래서 문학의 효용은 확실히 계산하기 어려운 것이다. 언어가 구성한 공간은 이처럼 넉넉하고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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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발자취.

BookToniC 2011. 4. 25. 20:21

이제 저 어지러운 발자취들을 거두자
거기에 가는 시선을 거두고
물가에 서 있던 마음도 거두자
나를 버린 날들 저 어지러운 발자취들을 거두어
멀리 바람의 길목에 이르자 처음부터
바람이 내 길이었으니
내 심장이 뛰는 것 또한 바람의 한
사소한 일이었으니

- 장석남,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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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 벗으란 말야!"

확실하지는 않지만 교도관들이 욕설을 해대는 듯했다. 모든 것이 몽롱했다. 얻어터지면서 옷이 벗겨졌고 몽둥이질은 얼마 동안 계속됐다. 육체적 아픔이란 참을 수 있는 것이기에, 이러한 물리적 폭력에 정말 고통을 느끼지는 않았다.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나의 내부에서 깨지는, 심리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다. 영혼에 상처를 받았다. 몽둥이질을 끝낸 교도관들은 내 옷을 들고 가버렸다. 나는 벌거벗긴 채 홀로 남겨졌다. 그전에도 없었고 그후에도 없으리만큼 비참해졌으며, 심학 타박상을 입었고 심리적으로 큰 상처를 받았다..

저녁 무렵 주임 교도관이 이끄는 네댓 명의 교도관들이 찾아왔다.

"우리를 얼간이로 본단 말이지?"

교도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말을 하지 않자 그들도 그쳤다. 그 교도관들도 몇 차례 구타를 했지만, 낮에 폭행을 가했던 세 명처럼 타락한 것 같지는 않았다. 교도관들은 뒤늦게야 철부지 어린애를 상대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무언가 묘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충격을 받고 의지를 상실한 채 나는 쪼그리고 있었다. 변두리 꼬마들처럼 허풍을 떨고 반항했지만 적어도 그날까지 나는 권위를 존중했고 국가를 상징하는 사람들에게 복종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 대한 무서운 분노와 멸시, 혐오감이 생겨났다.

어린아이처럼 살아왔던 나는 이제 막 살해된 것이다.

이런 얘기들을 내뱉으면서 오늘날에도 그러한 치욕을 받는 젊음이들을 생각한다. 마치 상처입은 짐승처럼 울부짖고 싶다. 상처받은 인간보다 더 짐승스러운 것은 없다.

- Philippe Maurice, <증오에서 삶으로>,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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