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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07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2. 2010.04.04 지문을 부른다.
  3. 2010.03.10 금기와 위반.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백석, 정본 백석시집, 문학동네

이렇게 쓸쓸한 저녁에는 한 시인의 시를 읽는 것만이 위안이다.
만져질 것처럼 공기가 무거울 때, 침묵이 쌓였을 때,
노트북의 냉각팬만이 한껏 가벼울 때,

나는 삶이 버겁다.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형제와 떨어져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담겨진 고양이 새끼처럼,
달리 어찌할 줄 모르고 가라앉고 만다.

눈을 만지고 싶다.
AND

지문을 부른다.

BookToniC 2010. 4. 4. 19:35


진눈깨비 속을
웅크려 헤쳐 나가며 작업시간에
가끔 이렇게 일보러 나오면
참말 좋겠다고 웃음 나누며
우리는 동회로 들어선다

초라한 스물아홉 사내의
사진 껍질을 벗기며
가리봉동 공단에 묻힌 지가
어언 육년, 세월은 밤낮으로 흘러
뜻도 없이 죽음처럼 노동 속에 흘러
한번쯤은 똑같은 국민임을 확인하며
주민등록 경신을 한다

평생토록 죄진 적 없이
이 손으로 우리 식구 먹여살리고
수출품을 생산해 온
검고 투박한 자랑스런 손을 들어
지문을 찍는다

없어, 선명하게
없어,
노동 속에 문드러져
너와 나 사람마다 다르다는
지문이 나오지를 않아
없어, 정형도 이형도 문형도
사라져 버렸어

임석경찰은 화를 내도
긴 노동 속에
물 건너간 수출품 속에 묻혀
지문도, 청춘도, 존재마저
사라져 버렸나봐

몇 번이고 찍어 보다
끝내 지문이 나오지 않는 화공약품 공장
아가씨들은 끝내 울음이 북받치고
줄지어 나오는, 지문 나오지 않는 사람들끼리
우리는 존재조차 없어
강도질해도 흔적도 남지 않을거라며
정형이 농지껄여도
더 이상 아무도 웃지 않는다

지문 없는 우리들은
얼어붙은 창문으로
똑같은 국민임을 되뇌이며
파편으로 내리꽂히는 진눈깨비 속을 헤쳐
공단 속으로 묻혀져 간다
선명하게 되살아날
지문을 부르며
노동자의 푸르른 생명을 부르며
되살아날
너와 나의 존재
노동자의 새봄을
부르며 부르며
진눈깨비 속으로
타오르는 갈망으로 간다

- 박노해, 노동의 새벽, 풀빛
AND

금기와 위반.

BookToniC 2010. 3. 10. 21:38

인간의 반항은 결국 충동을 가속화시킬 뿐이다. 고뇌는 충동을 가속화시키는 동시에 더욱 분명히 느껴지게 할 뿐이다. 겉으로 보기에 인간은 거부의 태도를 취한다. 인간은 그를 끌고 가는 충동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그 충동을 부채질할 뿐이고, 그럴수록 그는 더욱 혼미에 빠질 뿐이다.

인간이 격렬한 에너지의 남용과 절멸의 축제인 자연을 거부하기 위해 금기를 두었다고 본다면, 죽음과 성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자연과 생물체들이 벌이는 축제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성과 죽음은 존재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지속의 욕구에 역행하여 모든 존재로 하여금 무한한 낭비를 조장한다.

- 조르쥬 바따이유, 에로티즘,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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