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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04 제도와 감정.
  2. 2011.04.28 나와 너.
  3. 2011.04.27 공자.

제도와 감정.

BookToniC 2011. 5. 4. 04:25

제도가 공적 생활을 낳지 않는다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고 또 그만큼 고통은 커지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현대의 고뇌가 생겨나는 것이다. 또한 감정이 개인 생활을 낳지 않는다는 사실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이해되어 왔다. 왜냐하면 감정은 가장 개인적인 것 속에 깃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개의 현대인이 그렇듯 사람이 지나치게 자신의 감정에 사로잡힌 끝에 결국 감정의 비현실성에 절망한다 하더라도 사람은 그 절망에 의하여 쉽사리 깨우침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절망도 역시 하나의 감정이며 매우 흥미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 마르틴 부버, 나와 너,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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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

BookToniC 2011. 4. 28. 21:35

자유인이란 자의에 속박되지 않고 의욕하는 사람이다. 그는 현실을 보고 있다. 즉 '나'와 '너'의 실재하는 두 존재의 실재적인 결합을 믿고 있다. 그는 운명을 믿으며, 그것이 그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믿는다. 운명은 그를 마음대로 부리지 않는다. 운명은 그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는 그것을 향해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서도 그는 운명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의 온 존재를 기울여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며, 그는 이것을 알고 있다. 그의 결단이 의도하는 대로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어날 것은 그가 의욕할 수 있는 것을 향하여 결단할 때에만 일어날 것이다. 그는 사물이나 충동에 지배되고 있는 그의 작은 의지, 부자유한 의지를 그의 큰 의지를 위하여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운명지워진 것을 떠나서 운명에로 나아가는 큰 의지를 위하여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에 그는 더 이상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사물을 그냥 되어지는 대로 버려두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생성되어 나오는 것, 곧 세계에 있어서의 존재의 길을 엿듣는다. 그 길에 의하여 운반되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그의 참여를 필요로 하고 있는 생성을, 그것이 그에 의하여 실현되기를 바라는 대로, 사람인 그의 정신과 행위로써, 그의 삶과 죽음으로써 실현하기 위하여서이다.

자유인이란 믿는 사람이라고 내가 말했거니와, 이 말의 뜻은 '그는 만난다'는 것이다.

- 마르틴 부버, 나와 너,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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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BookToniC 2011. 4. 27. 19:29

H.G.Creel 의 [공자] (원제 : Confucius : the Man and the Myth, 1949) 를 재미있게 읽었다. 최근덕 선생의 [한글논어, 1995] 를 일독한 후에도 영 구절들의 의미가 밝게 다가오지 않아 답답해하던 차에 만난 크릴의 책은 가문 날 단비와 같았다.

이 책은 논어에 대한 주석이나 해설서는 아니다. 오히려, 인간 공자는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질문하고, 저자가 초기 공자의 삶과 사상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는 유일한 텍스트로 인정한 '논어'를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한다.

'인간' 공자의 모습은 자못 정감있다. 특히 공자 개인의 삶과 공자의 곁을 지켰던 제자들과의 관계가 재치 넘치는 필치로 꽤 많은 장을 할애해 서술되어 있다. 이 장을 읽는 독자들은 누구나, 나이와 신분을 넘어 스승에 대한 예의와 사랑으로 똘똘 뭉친 훈훈한 사내들을 만나고, 곧 그들에게 친근감을 느낄 것이다. 공자도, 제자들도, 마음 속에 그리는 것보다 더 털털하고, 더 소심하고, 그리고 더 순수하다.

크릴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공자 사상의 본질은 개혁적 민주주의에 가깝다고 감히 주장한다. 인간을 믿고, 교육의 힘을 통해 인간의 교정됨을 믿고, 이것이 예에 반영되어 정치의 근간을 이루기를 주장했던 공자의 사상은 당대로서도, 오늘날로서도 혁명적인 민주주의 사상의 원천으로 조명받을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고증학적 지식을 토대로, 논어 외 예기, 주역, 좌씨전 같은 공자의 저서들을 단연코 '후대의 위작'이라고 단정한다. 공자 사후, 맹자와 순자를 거쳐 의례화하고 공식화한 유교가 역사를 거치며 신비주의적 도가와 전제주의적 법가의 사상에 왜곡되고 첨가되어 오늘날 공자의 모습은 초기 유교와는 전혀 다른 권위적이고 계급적인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초기유교의 모습은 오히려, 고대 중국 역사의 제한적 조건 아래서 최대한으로 추구할 수 있었던 민주주의 사상에 가깝다는 것이 크릴의 주장이다.

이 주장은 편협하다. 그러나 고전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잊혀진 고대의 고전과 현대의 사상을 연결시킨다. 그래서 가슴이 뛴다.

나는 초등학교 때 3년 동안 한문을 배운 적이 있다. 지금은 고층의 아파트가 들어선 배봉육교 어귀, 판자집촌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목에 서당이 있었다. 괴산에서 올라온 귀가 큰 할아버지 선생님이 자필로 쓰고 묶은 허름한 책을 가지고 한문을 가르쳤다. 할아버지 선생님이 선창한 대로, 불경처럼 명심보감을 후창했던 앞니 빠진 검은머리 소년이 기억난다. 나는 3년을 배우고도 삼경은 커녕 명심보감도 들었다 놓기만 했다. 선생은, 내가 한자를 못 외운다고 때리기는 커녕 과일이나 깎게 한 나쁜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은근한, 마치 서당 훈장이셨던 외할아버지가 생존해 계셨다면, 그분께서 외손자에게 꼭 한번은 불러주셨을 특유의 경읽기는, 리듬이 좋았다.

나는 이 책에서 잊었던 그 리듬을 다시 듣는다. 동양의 고전은 현대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건, 내게 지나치고 잊혀진 것만 같던,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세계와 오늘의 나를 이어주는 '느낌'을 준다. 나는 그것이 참 고마웠다.


끝으로 이 세상의 모든 종류의 교조주의자들이 경청할 공자의 한 구절, 크릴이 주목했던 그 구절을 첨부한다. 나는 이 구절이 단박에 좋아져서, 여러번 읽고 외우게 되었다.. 물론 한 번 보고 외울 정도로 짧아서이지만.

"공자는 제자들에게 진리를 말하지도 않았고, 절대적인 가치 척도를 제시하지도 않았으며, 그들 스스로 진리에 도달하도록 교육하였다.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인간이 도를 넓힐 수는 있지만, 도가 스스로 인간을 넓게 할 수는 없다고 하셨다.' (子曰 人能弘道 非道弘人)"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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