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BookToniC | 112 ARTICLE FOUND

  1. 2011.05.09 작심.
  2. 2011.05.08 리얼리즘.
  3. 2011.05.07 그건 그냥 낱말 하나일 뿐인데.

작심.

BookToniC 2011. 5. 9. 23:38

모든 약속은 보름 동안만 지키기로 했네
보름이 지나면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다른 데를 보듯 나는 나의 약속을 외면할 거야
나의 삶을 대질심문하는 일도 보름이면 족해
보름이 지나면
이스트로 부풀린 빵 같은 나의 질문들을 거두어 갈거야
그러면 당신은 사라지는 약속의 뒷등을 보겠지
하지만, 보름은 아주 아주 충분한 시간
보름은 나를 당신을 부드럽게 설명하는 시간
그리곤 서서히 말들이 우리들을 이별할 거야
달이 한 번 사라지는 속도로
그렇게 오래

- 문태준, 그늘의 발달,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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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BookToniC 2011. 5. 8. 08:28

우리가 비평용어로, 때론 정치나 시사용어로 즐겨 사용하는 리얼리즘은 사실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양심적 리얼리즘과 의식적 리얼리즘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둘은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서로 상이한 철학적 입장, 대응이론과 통일이론에서 기인한다.

대응이론은 경험론적이고 인식론적이다. 이것은 외부세계의 존재에 대한 소박하고도 상식적인 리얼리스트의 신념을 내포하는 것이며, 관찰과 비교에 의하여 그 세계를 정확히 알게 되리라고 상정한다. 진리는 단정된 현실에 대응하고 접근하는 것이며 이를 충실하고 정확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여 실증하고, 한정짓고, 정의를 내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실증주의자와 결정론자들의 진리가 그것이다. 이 이론은 다수파의 확실한 동의를 얻어 자신을 얻으며, 따라서 그것을 객관적이라고 부른다.

통일이론에서는 이와 반대로 인식과정이 직관적 이해에 의하여 가속화되거나 단축, 생략된다. 진리란 기록에 의하여 실증하고 분석함에 의하여 도달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다는 확신에 의하여 조성되는 기성품적인 종합명제로 통용된다. 증거는 자신으로 대체된다.

첫째 경우에 있어서 진리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진실하지만, 둘째 경우는 어떤 선線이나 칼날이 곧고 결함이 없을 때에 진실하다 말할 수 있는 의미에서의 진리이다. 이 경우 단순히 진리를 나타내거나 암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진리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현실이 마치 진리라는 복병의 습격을 받고 체포된 형국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지각행동 바로 그 속에서 발견되고 어느 의미에서는 창조되는 것이다. 전자는 포획하고 후자는 해방한다.

대응이론은 양심적 리얼리즘의 철학적 바탕이다. 18세기 자연과학의 발달과 프랑스 미술의 성취에게서 자극받은 발자크, 스탕달 등으로부터 추동되어 에밀 졸라에게서 절정에 이른 리얼리즘이 바로 양심적 리얼리즘이다.

기록적이라든가 사실소설이라든가 고백시에 각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 리얼리즘의 고민하는 양심이다. 이것은 작품 내부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부당하게 외부로부터 가해진 가치이며, 작품내용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의 허세에 부여된 것에 불과하다.

즉, "예술의 제1목적은 현실재생이다." Chernishevsky.

양심의 리얼리즘이 그 힘의 전부를 그 단순성으로부터 유출하였음에 반하여, 의식단계의 리얼리즘은 그 자체의 복잡성을 자각함에 의존한다.

리얼리즘 통일이론은 문학의 자아, 문학의 인식이다. 이 경우 리얼리즘은 모방에 의하여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에 의하여 성취된다. 인생의 소재를 다루되 그 소재를 상상력의 중개에 의하여 단순한 사실성의 영역으로부터 보다 고차적인 질서로 변화시키는 창조이론이다.

결국, "최종적 믿음은 허구를 허구라고 알면서도 믿는 일이다.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허구임을 알고 그것을 기꺼이 믿는다는 것은 절묘한 진실이다." Wallace Stevens

- Damian Grant, Realism, Methuen(서울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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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때 난 한동안 만담꾼이었다. 고쳐 말해야겠다. 나는 한동안 형편없는 만담꾼이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너무 두려워서 안절부절못한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내가 하는 얘기가 거짓이라는 거였다. 뭔가 훌륭한 걸 쓰거나 뭔가 훌륭한 걸 말하기 위해서 굉장한 뭔가를 꾸며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아직 깨닫지 못했던 거였다.

난 그저 할 수 있는 한 힘껏 내 자신이 되기만 하면 되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난 뛰어난 카우보인 시인인 와디 미첼이라는 친구와 주로 붙어 다니며 꽤 많은 축제에 참가햇다. 한번은 앤 아버에서 벌어진 축제의 마지막 저녁이 지나고, 남달리 뛰어난 만담꾼인 밀버 비치와 함께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나더러 내 대표 이야기를 해보라 하더니 그걸 낱말 하나하나 평가해 주었다. 내가 한 군데에서 뭔가를 묘사하다가 틀린 낱말을 썼는데 (난 흙손을 삽이라 불렀다.) 그녀가 내 말을 고쳐주었을 때 난 이렇게 말했다. (이제 마흔두 살이 되고 나서 스물여섯 먹은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던 걸 떠올리니 소름이 끼친다.)

"그건 그냥 낱말 하나일 뿐인데."

"그냥 낱말일 뿐이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아냐. 넌 날 털었어. 내 지갑을 훔친 것처럼 분명히. 넌 말을 들이대고 날 털어서는, 내 삶의 한순간을 훔쳐갔어. 네가 무대에 선 모든 시간에 아니면 다른 사람더러 읽으라고 무언가를 쓰는 모든 시간에, 네 얘길 듣고 네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은 다른 데서 쓸 수도 있는 값진 시간을 너한테 주고 있는 거야.

넌 그 사람들이 네게 주는 일분 일초에 책임이 있어. 넌 그 사람들에게 그 모든 순간에 맞먹는 선물을 - 네가 진실이라고 이해하는 그 진실을 함께 담아서 - 줘야 하는 거야."

- Derrick Jensen, Walking on Water, Chelsea Green Publishing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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