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정원.

BookToniC 2011. 4. 26. 22:43

나는 오래 된 정원을 하나 가지고 있지
삶을 상처라고 가르치는 정원은
밤낮없이 빛으로 낭자했어
더 이상은 아물지도 않았지
시간을 발밑에 묻고 있는 꽃나무와
이마 환하고 그림자 긴 바위돌의 인사를 보며
나는 그곳으로 들어서곤 했지 무성한
빗방울 지나갈 땐 커다란 손바닥이 정원의
어느 곳에서부턴가 자라나와 정원 위에
펼치던 것 나는 내
가슴에 숨어서 보곤 했지 왜 그랬을까
새들이 날아가면 공중엔 길이 났어
새보다 내겐 공중의 길이 더 선명했어
어디에 닿을지
별은 받침대도 없이 뜨곤 했지
내가 저 별을 보기까지
수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나는
떡갈나무의 번역으로도 읽고
강아지풀의 번역으로도 읽었지
물방울이 맺힌 걸 보면
물방울 속에서 많은 얼굴들이 보였어
빛들은 물방울을 안고 흩어지곤 했지 그러면
몸이 아프고 아픔은 침묵이 그립고
내 오래 된 정원은 침묵에 싸여
고스란히 다른 세상으로 갔지
그곳이 어디인지는 삶이 상처라고
길을 나서는 모든 아픔과 아픔의 추억과
저 녹슨 풍향계만이 알 뿐이지

- 장석남,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문학과 지성사


요 며칠간 문학에 많은 빚을 졌다. 장석남의 시가 없었더라면, 나의 삶은 적어도 당분간은 절룩거렸을 것이다. 그의 시가 조심스럽게 만들어 준 아담한 정원에서, 나는 울다가 지쳐 잠들고, 다시 일어나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지나가고 바람이 왔다 가고, 미끄러지는 물방울. 그곳에서 비로소 나는 헐거워진 내 마음을 놓아둘 수 있었다. 엄마의 품처럼 너그러웠다. 

그래서 문학의 효용은 확실히 계산하기 어려운 것이다. 언어가 구성한 공간은 이처럼 넉넉하고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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