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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18 그의 말을 들을수록.
  2. 2011.06.10 숙명적 아웃사이더.
  3. 2011.06.02 지친 반지.


아르헨티나나 예루살렘에서 회고록을 쓸 때나 검찰에게 또는 법정에서 말할 때 그의 말은 언제나 동일했고, 똑같은 단어로 표현되었다.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speak)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think),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떤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the words)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the presence of others)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reality as such)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아렌트가 유대인 학살의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재판을 참관하고 뉴요커에 보고서 형태로 연재했던 글을 모은 책이다. 책을 읽으며 기대하지 않았던 놀라움을 주는 것은 그녀의 문장이다. 번역서라는 근본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진실한 사유와 반짝이는 재치가 '품격있게' 문장에 녹아들어 있다. 그 솜씨가 대단히 능숙하고 유려하여, 풍부한 통찰을 담은 내용과 더불어 글을 읽는 맛을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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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표제이자 수록 작품 전체의 공통 표제인 '반성'은 글자 그대로 돌이켜 살핀다는 뜻이다. 시인 자신임이 분명한 화자는 자신의 일상을, 그리고 더러는 자신이 사는 세상을 신경질적으로, 신경이 뭉개질 만큼 돌이켜 살핀다. ... 그러면 그 기록의 주체인 화자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1980년대의 공식 역사가 누락시킨 개인이다.

한국의 1980년대는 ... 대자본가들의 시대였다. 동시에 바로 그만큼의 비중으로 ... 민주주의자들과 각성된 노동자들의 시대였다. 그리고 아마 그 이상의 비중으로 ... 다수 보통사람들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시대에는, 어느 시대에나 그렇듯, 이런 공식적 범주 어디에도 끼이지 못하는 개인들도 살고 있었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든 세상 자체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거나 적응하기 싫은 사람들, 그래서 심리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체제 바깥으로 퉁겨져 나온 사람들, 그러나 제 소외의 원인을 특정한 사회구성체나 정치제도에서 찾기보다는 사람살이의 생김새나 호모 사피엔스의 꼬락서니 자체에서 근원적으로 찾으려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진보의 기획 자체를 비웃게 마련인 이런 개인들은 '숙명적 아웃사이더'라 불릴 만한데, 공식 역사는 이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는다. 김영승은 아마 자신이 이 부류에 속한다고 판단한 듯하고, 바로 이들에게, 곧 자신에게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반성] 시편을 쓴 것 같다.

- 고종석, 모국어의 속살,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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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반지.

BookToniC 2011. 6. 2. 04:17

돌아가고픈, 사랑하고픈, 존재하고픈 욕망.
나누어가질 수 없는 두 줄기 물의 싸움에 시달려
죽고픈 욕망이 있다.
삶을 덮어줄 거대한 입맞춤이 그립다.
들끓는 고통이 아프리카에서 끝날 삶.
목숨을 끊어라.

주여! 욕망을 갖고 싶지 않은... 그런 욕망이
있습니다.
신성을 모독하는 손가락으로 당신을 가리킵니다.
마음이 없었더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봄은 돌아, 돌아오고, 다시 떠나리라. 그리고, 신은
세월의 무게로 허리가 휘어져 우주의 등뼈를 지고
그렇게 자꾸자꾸 흘러만 가리라.

관자놀이에서 암울한 북이 울릴 때,
비수에 새겨진 꿈이 아플 때,
이 시에 그대로 머무르고픈 욕망이 있다.

- 세사르 바예호,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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