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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26 헤어짐이 슬픈 건.
  2. 2011.06.21 어떻게 하면 좋으니, 이 유치함을.
  3. 2011.06.20 정의로운 예루살렘을 위한 판결문.

헤어짐이 슬픈 건.

BookToniC 2011. 6. 26. 22:00

헤어짐이 슬픈 건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만남의 가치를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이 아쉬운 이유는 존재했던 모든 것들이 그 빈자리 속에서 비로소 빛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더 슬픈건, 사랑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야 알게 되기 때문에.

- 공지영,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소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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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서울을 떠나온 한상병은 다시 부대로 돌아온다. 부대 근처에는 몰개월이라는 사창가가 있지. 몰개월에는 그리고 미자라는 여자가 살고 있단다. 미자가 빗길에 엎어진 채 쓰러져 있던 것을 주인공이 구해 준 인연이 두 사람에게는 있다. 그녀들은 삶의 막다른 골목에 이른 사람들. 미자는 뜻밖에도 조신한 여자 노릇을 하며 한상병을 사랑하기 시작하지. 그러나 한상병 쪽에서 그녀들은 그저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만도 못한 사람들이야. 그러나 그녀들은 인권을 유린당하고 코피가 터지게 남자들에게 맞으면서도 떠나가는 군인들을 위해 삶은 고구마와 김밥을 준비하기도 한다.

그런 그녀가 월남으로 떠나는 한상병을 따라 트럭의 먼지 속을 달려와 하얀 손수건에 싼 것을 던져 넣는다. 풀어보니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잡한 오뚝이 한쌍. 미자로서는 아마 그렇게 살아 돌아오라는 사랑의 표시였겠지. 오뚝이처럼 쓰러져도 일어나라고 말이야. 어떻게 하면 좋으니, 이 유치함을.

나는 승선해서 손수건에 싼 것을 풀어 보았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오뚝이 한 쌍이었다. 그 무렵에는 아직 어렸던 모양이라 나는 그것을 남지나해 속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작전에 나가서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황석영, 몰개월의 새)

소설은 설명 없이 곧 끝나 버린다. 이 구절이 엄마와 엄마의 세대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너에게 다 설명할 말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 구절을 읽고 나서 엄마는 모든 유치한 것을 경멸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가끔은 모든 유치함에 깃든 순진성에 경의를 표하기까지 했지.

창문을 덜컹이며 바람이 세어지는구나. 엄마 역시 가끔씩 엄마를 시달리게 만드는 삶의 편린들을 기억하고야 만다. 정거장들, 이별들 그리고 얼굴들과 불빛들.

위녕, 때로는 고난이,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이, 때로는 밑바닥이, 우리를 성숙시키고 풍요롭게 만드는 인생의 신비를 엄마는 이때부터 연습하듯 감지하기 시작했단다. 엄마가 좋아하는 로마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트레이너인 신이 당신을 최후의 승자로 만들기 위해 아주 어려운 상대와 연습게임을 하도록 한 거라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힘들지? 자유롭고 싶지? 그래 그러나 고통과 인내가 없는 자유의 길은 없단다. 감히, 단언하건데 그런 건 없어. 엄마가 오늘 너무 지당한 잔소리를 하고 있나?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비로소 엄마도 알게 되었는 걸. 인생에는 유치한 일도 없고, 거저 얻는 자유도 없고, 오직 모든 것은 제각기 고유한 가치가 있다는 말밖에 할 수 없구나.

엄마는 고유한 수영법을 배워서 수영을 해야 할 거 같아.

자, 오늘도 좋은 하루!

- 공지영,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오픈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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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아이히만)는 전쟁기간 동안 유대인에게 저지른 범죄가 기록된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범죄라는 것을 인정했고, 또 피고가 거기서 한 역할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피고는 자신이 결코 사악한 동기에서 행동한 것이 결코 아니고, 누구를 죽일 어떠한 의도도 결코 갖지 않았으며, 결코 유대인을 증오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와는 다르게 행동할 수는 없었으며, 또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믿기가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동기와 양심의 문제에서 합당한 의심을 넘어선 것으로 입증될 수 있는 당신에 대한 증거는 비록 많지는 않지만 일부 존재합니다.

피고는 또한 최종 해결책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은 우연적인 것이었으며, 대체로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역할을 떠맡을 수 있으며, 따라서 잠재적으로 거의 모든 독일인들이 똑같이 유죄라고 말했습니다. 피고가 말하려는 의도는 모든 사람, 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유죄인 곳에서는 아무도 유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상당히 일반적인 결론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피고에 대해 기꺼이 내주고 싶은 결론은 아닙니다. 그리고 만일 피고가 우리의 거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성서에 나오는 두 이웃하는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에 주목해 볼 것을 권합니다. 이 두 도시는 거기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죄가 있었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내려온 불로 인해 파괴되었습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집단적 죄'라는 최신식 개념과는 무관합니다. 이 개념에 따르면 그들 자신이 행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의 이름으로 행해진 일(그들이 참여하지도 않았고 또 그로부터 이익을 얻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유죄로 추정한다는 것, 또는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법 앞에서의 유죄와 무죄는 객관적인 본질의 것이지만, 그러나 비록 8천만 독일인이 피고처럼 행동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피고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운 좋게도 우리는 그만큼 멀리 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피고 자신은 전대미문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주된 정치적 목적이 된 국가에서 산 모든 사람의 편에 서서 그 죄가 현실적으로가 아니라 오직 잠재적으로만 유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내적이고 외적인 어떠한 우연적 상황을 통해 피고가 범죄인이 되는 길로 내몰렸는지 간에, 피고가 행한 일의 현실성과 다른 사람들이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잠재성 사이에는 협곡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오직 피고가 한 일에만 관여할 뿐, 피고의 내적 삶과 피고의 동기에서 가능한 비범죄적 본성 또는 피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범죄적 가능성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피고는 피고의 이야기를 불운에 찬 이야기로 만들어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알고 있는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는 만일 상황이 보다 유리했더라면 피고는 우리 앞이나 또는 다른 형사재판소로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는 점도 당신에게 인정해 줄 용의가 있습니다.

논증을 위해서 피고가 대량학살의 조직체에서 기꺼이 움직인 하나의 도구가 되었던 것은 단지 불운이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그래도) 피고가 대량학살 정책을 수행했고, 따라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피고와 피고의 상관들이 누가 이 세상에 거주할 수 있고 없는지를 결정한 어떤 권한을 갖고 있는 것처럼) 이 지구를 유대인 및 수많은 다른 민족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기를 원하지 않는 정책을 피고가 지지하고 수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즉 인류 구성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피고와 이 지구를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교수형에 처해져야 하는 이유, 유일한 이유입니다.

-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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