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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06 내 출석번호는 16번이었다.
  2. 2012.04.06 아름다움에게.
  3. 2012.03.31 오랫동안. 3

중학교 1학년과 3학년 때 내 출석번호는 16번이었다. 출석번호는 이름 순서 아니면 키 순서로 정해졌는데, 성은 박이고 키도 애매하게 크다 만 나는 이름과 키 어느 쪽으로 하든 반에서 중간 쯤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첫번째 16번이었을 때, 그러니까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 때의 영어 성적은 전교에서도 밑바닥인 60점대였다. 중학교 선생님이었던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는 ABC 알파벳만 알면 된다고, 그 흔한 윤선생 영어도 민병철 어학원도 보내지 않았다. 친구들보다 먼저 배우는 반칙하지 말라고, 중학교 3년 내내 학원도 보내지 않았다. 이른바 직구의 시대, 맨땅에 헤딩했던 그 때의 나는 세상이 참 버겁기만 하다고 생각했다.

두번째 16번이었을 때,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에 몇장이라도 말도 안되는 글이라도 끄적이면서, 흐릿하기만 했던 나를 가다듬어 갔다. 그 때 싸이월드가 활성화 되어 있었다면, 나는 장근석 못지 않은 중2병 샘플로 회자되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서툴렀지만, 다소 자아에 침잠되어 있었지만, 조금씩 나는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엔가, 교복이 유난히 몸에 꽉 끼인다고 느껴졌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다시는, 16번이 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16번이었던 시절은, 언제나 서툴렀지만 독고다이 세상에 나밖에 없을 거라는 망상을 짊어지고 있었지만, 그 시절을 거치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아마도, 이 세상 누구에게나 16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언젠가 한번쯤은 16번이었던 우리는,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의 16번 시절을 각박하게 몰아치기 보다는, 한층 너그럽고 여유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보듬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되겠지만. 나는 내가 16번이었던 그 시절을 따듯하게 기억하고 있다.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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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게.

Pooongkyung 2012. 4. 6. 19:39

씻다가, 문득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라 먹먹해졌다. 이 세상은 단정한 운율과 아름다운 시어로 채워져 있는 서정시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내 옆에서, 또는 내게서 일어나는 비겁하고 처참한 일들 앞에서, 진실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갈망은 커지기 마련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아름다움이, 더러운 현실을 만났을 때. 아름다움은 사뿐히 그 현실을 즈려밟는 대신, 망신창이가 된 현실을 꼭 껴안아야 하지 않을까. 아파도. 상식적인 윤리를 외면하는 학문과, 정치에게 찬물을 끼얹어야 한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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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Intro. juna 2012. 3. 31. 03:50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블로그 주소를 치면, 바로 보이는 그의 얼굴에 몸둘 바를 몰랐다. 뭔가를 써야지, 하고 들어왔다가도, 그의 얼굴을 보면 그만 먹먹해져서 도망치듯 윈도창을 내리곤 했다 무언가, 무언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토할 것만 같아, 꾹꾹 눌러삼켰던 것이.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그렇게 두달이 지났다.

피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은 써야 한다. 써져야 한다. 그 누구도 막아서는 안되며, 막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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