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과 3학년 때 내 출석번호는 16번이었다. 출석번호는 이름 순서 아니면 키 순서로 정해졌는데, 성은 박이고 키도 애매하게 크다 만 나는 이름과 키 어느 쪽으로 하든 반에서 중간 쯤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첫번째 16번이었을 때, 그러니까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 때의 영어 성적은 전교에서도 밑바닥인 60점대였다. 중학교 선생님이었던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는 ABC 알파벳만 알면 된다고, 그 흔한 윤선생 영어도 민병철 어학원도 보내지 않았다. 친구들보다 먼저 배우는 반칙하지 말라고, 중학교 3년 내내 학원도 보내지 않았다. 이른바 직구의 시대, 맨땅에 헤딩했던 그 때의 나는 세상이 참 버겁기만 하다고 생각했다.

두번째 16번이었을 때,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에 몇장이라도 말도 안되는 글이라도 끄적이면서, 흐릿하기만 했던 나를 가다듬어 갔다. 그 때 싸이월드가 활성화 되어 있었다면, 나는 장근석 못지 않은 중2병 샘플로 회자되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서툴렀지만, 다소 자아에 침잠되어 있었지만, 조금씩 나는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엔가, 교복이 유난히 몸에 꽉 끼인다고 느껴졌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다시는, 16번이 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16번이었던 시절은, 언제나 서툴렀지만 독고다이 세상에 나밖에 없을 거라는 망상을 짊어지고 있었지만, 그 시절을 거치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아마도, 이 세상 누구에게나 16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언젠가 한번쯤은 16번이었던 우리는,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의 16번 시절을 각박하게 몰아치기 보다는, 한층 너그럽고 여유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보듬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되겠지만. 나는 내가 16번이었던 그 시절을 따듯하게 기억하고 있다. 잊을 수 없을 것이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