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구상을 하나 했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거야... 이번에는 단순히 내 침실을 그리기로 했다. 오로지 색채만으로 모든 것을 그리고, 색을 단순화시켜 방 안의 모든 물건에 장엄한 양식을 부여하려고 한다. 여기서 색채로 휴식 또는 수면을 암시할 수 있을 거야. 한마디로 말해 이 그림을 보고 두뇌와 상상력이 쉴 수 있도록 말이야.

벽은 옅은 보라색으로 하고 바닥은 붉은 타일, 나무 침대와 의자는 신선한 버터와 같은 노란색, 요와 베개는 초록빛이 도는 밝은 레몬색, 침대보는 진홍색, 창문은 초록색, 세면대는 오렌지 색이고 대야는 푸른색, 그리고 문은 라일락 색이야.

그게 전부야. 이 답답한 방 속에는 닫혀진 문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가구를 굵은 선으로 해서 다시 한번 완전한 휴식을 표현해야 해. 벽에는 초상화가 걸려 있고 거울 하나와 수건, 그리고 옷 몇 벌이 있어.

그림틀은 흰색이어야 할 테지 - 왜냐하면 그림 속에는 흰색이 하나도 없거든. 이것은 내가 어쩔 수 없이 취해야만 하는 강요된 휴식에 보복하려는 마음에서이지.

오늘 하루 종일 이 그림을 다시 그릴거야. 하지만 보다시피 이 구상은 너무 단순해. 명암과 그림자는 없애버리고 일본 판화처럼 자유롭고 평평하게 색을 칠하려고 해..

- 곰브리치,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in 서양미술사, 예경


VAN GOGH, Vincent, La Chambre de Van Gogh à Arles (Van Gogh's Room at Arles)
1889, Oil on canvas, 57 x 74 cm (22 1/2 x 29 1/3 in), Musee d'Orsay,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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