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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9 異端
  2. 2010.02.07 긴 손가락의 詩
  3. 2010.02.02 색채에 대한 나의 가설, 진짜를 보라

異端

BookToniC 2010. 2. 9. 19:37

- 모든 신성은 찬양된 그 순간이
  신성모독이다

그러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라는 결론을 나는 부정한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자들의 몫이므로

아침은 언제나 역사적 사건이었다
제때에 퇴장할 줄 아는
어둠의 페어플레이가 돋보이고
참새의 사소한 연설이 웅장하며
마당 가득 덮어놓은
이슬의 함성이 우렁차기에
신문을 덮고 창문을 여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불행은
내가 생각해 온 행복이란 단어와 동의어였다

대하소설은 이제 끝났다
그것은 모든 어머니들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질긴 지붕이었다

모든 딸들은 저 아득한 서사구조의 끄트머리에
뾰족한 고드름처럼 얼어 있고
지금 봄볕은 똑, 또옥, 똑, 얼음을 녹이며
물방울 종족을 낙하시키고 있다

- 김소연,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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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손가락의 詩

BookToniC 2010. 2. 7. 12:56

 시를 쓰는 건
 내 손가락을 쓰는 일이 머리를 쓰는 일보다 중요하기
때문. 내 손가락, 내 몸에서 가장 멀리 뻗어나와 있다.
나무를 봐. 몸통에서 가장 멀리 있는 가지처럼, 나는 건
드린다. 고요한 밤의 숨결, 흘러가는 물소리를, 불타는
다른 나무의 뜨거움을.

 모두 다른 것을 가리킨다. 방향을 틀어 제 몸에 대는
것은 가지가 아니다. 가장 멀리 있는 가지는 가장 여리
다. 잘 부러진다. 가지는 물을 빨아들이지도 못하고 나
무를 지탱하지도 않는다. 빗방울 떨어진다. 그래도 나는
쓴다. 내게서 제일 멀리 나와 있다. 손가락 끝에서 시간
의 잎들이 피어난다

-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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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땐가, 난 나만의 가설을 하나 만들었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색깔을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면 어떻게 될지에 관한 거였다.

.. 이건 절대 쓸 만한 가설이 아니지만, 그림을 시작한 뒤론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실제 색에 대한 내 관찰이 얼마나 부정확한지 점점 더 깨닫게 된다. 나는 색맹도 아니고 시력도 양쪽 다 2.0으로 좋지만, 눈앞에 있는 게 실제로 어떤지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근본적인 원인은 현실세계를 상징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고 관찰한 것을 상징적으로 간략화 (이건 자동차, 저건 사람 하는 식으로) 해 버리면, 눈앞에 있는 구체적인 실제 세계를 정확하게 재현하는 대신 그저 상징만 그리게 된다. 그러면 일반적인 개념에 대해서는 소통할 수 있겠지만, 거기 있는 사물의 구체적인 본질은 절대 깨닫지 못하게 된다.

Danny Gregory



그래서는 안 된다. 정확히 그려야 한다.

요즘 들어 내 주변의 진짜 색이 무엇인지 집중하려고 애쓰고 있다. 산책할 땐 벽 한 조각만 따로 떼어 집중하면서 그 본연의 색이 어떤 건지 보려 한다.
 
"벽은 갈색 같은데 그림자가 드리운 부분은 약간 분홍빛이 돌고, 돌림띄 윗부분은 은빛이거나 말로 설명하기 힘든 색이지만 약간 보라가 가미된 빛나는 회색이군." 이렇게 말이다.

그것은 수많은 색조와 명도, 채도를 갖고 있어서 구별하고 기억하기 어려우며, 다시 만들기도 어렵다. 하지만 내 목적은 얼마나 예민하게 보느냐다. 뇌의 간섭을 줄이고 지금 이순간 이 자리에서 보이는 실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거다.

세상을 캐리커쳐처럼 간략화해서 보는 게 아니라 나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풍성히 누리려는 거다. 그건 내가 살아가는 삶 자체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그 벽을 본다면 그건 갈색일 것이다.

하지만 내 뒤에 비치는 찬란한 무지개도 함께 보게 하고 싶다.

- 대니 그레고리, <창작 면허 프로젝트>, 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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