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땐가, 난 나만의 가설을 하나 만들었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색깔을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면 어떻게 될지에 관한 거였다.

.. 이건 절대 쓸 만한 가설이 아니지만, 그림을 시작한 뒤론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실제 색에 대한 내 관찰이 얼마나 부정확한지 점점 더 깨닫게 된다. 나는 색맹도 아니고 시력도 양쪽 다 2.0으로 좋지만, 눈앞에 있는 게 실제로 어떤지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근본적인 원인은 현실세계를 상징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고 관찰한 것을 상징적으로 간략화 (이건 자동차, 저건 사람 하는 식으로) 해 버리면, 눈앞에 있는 구체적인 실제 세계를 정확하게 재현하는 대신 그저 상징만 그리게 된다. 그러면 일반적인 개념에 대해서는 소통할 수 있겠지만, 거기 있는 사물의 구체적인 본질은 절대 깨닫지 못하게 된다.

Danny Gregory



그래서는 안 된다. 정확히 그려야 한다.

요즘 들어 내 주변의 진짜 색이 무엇인지 집중하려고 애쓰고 있다. 산책할 땐 벽 한 조각만 따로 떼어 집중하면서 그 본연의 색이 어떤 건지 보려 한다.
 
"벽은 갈색 같은데 그림자가 드리운 부분은 약간 분홍빛이 돌고, 돌림띄 윗부분은 은빛이거나 말로 설명하기 힘든 색이지만 약간 보라가 가미된 빛나는 회색이군." 이렇게 말이다.

그것은 수많은 색조와 명도, 채도를 갖고 있어서 구별하고 기억하기 어려우며, 다시 만들기도 어렵다. 하지만 내 목적은 얼마나 예민하게 보느냐다. 뇌의 간섭을 줄이고 지금 이순간 이 자리에서 보이는 실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거다.

세상을 캐리커쳐처럼 간략화해서 보는 게 아니라 나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풍성히 누리려는 거다. 그건 내가 살아가는 삶 자체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그 벽을 본다면 그건 갈색일 것이다.

하지만 내 뒤에 비치는 찬란한 무지개도 함께 보게 하고 싶다.

- 대니 그레고리, <창작 면허 프로젝트>, 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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