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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24 버리고 돌아오다.
  2. 2009.12.05 이별의 말이 생겨나기 전.
  3. 2009.11.08 당신을 환영합니다, 여기는 가를롱! 6

버리고 돌아오다.

BookToniC 2009. 12. 24. 23:24

 지루한 글이었다 진전 없는 반복, 한사람의 생 읽
어내느라 소모된 시간들, 나는 비로소 문장 속으로
스며서, 이 골목 저 골목을 흡흡, 냄새 맡고 때론 휘
젓고 다니며, 만져보고 안아보았다, 지루했지만 살을
핥는 문장들, 군데군데 마지막이라 믿었던 시작들,
전부가 중간 없는 시작과 마지막의 고리 같았다, 길
을 잃을 때까지 돌아다니도록 배려된 시간이, 너무
많았다, 자라나는 욕망을 죄는 압방붕대가 너무, 헐
거웠다, 그러나 이상하다, 너를 버리고 돌아와 나는
쓰고 있다, 손이 쉽고 머리가 맑다, 첫 페이지를 열
때 예감했던 두꺼운 책에 대한 무거움들, 딱딱한 뒷
표지를 덮고 나니 증발되고 있다, 숙면에서 깬 듯 육
체가 개운하다, 이상하다, 내가 가벼울 수 있을까,
무겁고 질긴 문장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김소연, <버리고 돌아오다>, 문학과지성사
AND


끔찍하다

조그맣게 모인 물속
배를 내 눈알처럼 달고
올챙이가 헤엄치고 있다

아주 어둡고 덜 어두울 뿐인
둥근 배 속
다리 넷이
한데 엉겨 있다

한 통이다
한 통이 통째로 움직인다
마음 가면 마음이 전부 간다

속으로 울 때
손발이 모두
너의 눈물을 받아준다

너의 몸을 보고
내 몸을 보니
사람이 더 끔찍하다

팔을 밀어넣고
나의 다리를 밀어넣어
저 원적으로 돌아갔으면

둥근 배 속
아직은 이별의 말이 생겨나기 전

이별이라는 말에 태동이 있기 전

- 문태준, <그늘의 발달>, 문학과 지성사
AND


갸를롱 프로젝트 입구 저작권은 목수정씨에게 있습니다.


3년 전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받은 혼란스러운 감정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이곳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 때문에 희완과 나 사이에는 늘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희완은 자신이 하는 설치작업을 세상의 모든 예술작업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 했다. 희완의 말을 따를 수 없었던 것은 이 프로젝트가 250년 후에나 완성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이 작업을 더 이상 지속할 수도 그렇다고 내팽개칠 수도 없는 날이 다가오면 어떻게 하나 두려웠다. 그런 두려움이 그 일에 대한 나의 호감과 이해를 원천적으로 가로막았다.

그럼에도 내가 희완을 선택한 이상 그의 심장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이 공간도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나는 칼리와 내가 머무는 공간만큼은 갸를롱의 전진기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칼리와 나는 희완처럼 설치작업을 위해 여기 온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3개월 된 아이와 그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엄마로서 이곳에 지내는 것이므로 그에 합당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적어도 거실과 침실 벽에 페인트질은 하자고 합의를 보았다. 희완은 2주일이라는 금쪽같은 시간을 내어 나와 함께 페인트 붓을 들었다. 수십 년 묵은 때를 거둬내고, 그 위에 흰 페인트칠을 한 뒤 설치작품을 덧붙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부엌 벽의 얼룩을 감추다가 탄생한 벽화. 저작권은 목수정씨에게 있습니다.


갸를롱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15년만에 처음으로 희완은 주거 공간을 꾸미기 위해 땀을 흘렸던 것이고, 그가 흘린 이 예외적인 땀은 나를 위로했다. 갸를롱에 대한 나의 몰이해도 차츰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의 공동작업이 마무리 될 무렵 낯선 손님이 우리를 찾았다. 엠마누엘 라꾸뛰르. 풍경가라는 재미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한국식으로는 조경전문가 정도 될 텐데, 그의 작업은 나무와 꽃, 돌을 어디에 어떻게 놓는가에 국한되지 않았다. 마을 전체의 풍경을 고민했고, 자연 속에 우연히 주어진 사물들을 소재로 놀이를 끊임없이 개발하는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엠마누엘은 칼리가 태어난 바로 다음날 지방에서 열린 희완의 강의를 들었다. 그는 그때 "여름이 오면 갸를롱을 찾아, 거기서 땅을 파고 싶다."고 했고, 그 약속을 정확하게 지켰다.

그는 장난스러움과 진지함이 반씩 배합된 사람이었다. 나면서부터 자연의 모든 것들과 친구가 되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여유롭고 쿨한 인상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엔 자기는 늘 2시간씩 낮잠을 잔다면서, 자신의 느긋한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야채와 곡물이 중심이 된 나의 식단에 찬사를 바쳤다.

그는 희완과 갸를롱을 어슬렁거리다가 뜻밖의 방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작업의 대상이 된 적이 없는 곳이었다. 진흙으로 가득 찬 방을 파내려가니 브래지어와 팔 빠진 인형 그리고 군화 한 짝이 나왔다. 그들은 이 세가지가 명징하게 삶을 상징한다며 방 벽에 걸어 두었다. 진흙으로는 동그란 행성들을 빚어 방바닥 위에 은하계를 건설했다. 그들은 이 작업을 '투탕카멘의 집'이라고 불렀다.

'투탕카멘의 집'이 완성되는 동안 희완은 흥분에 휩싸여 몹시 수선스럽게 시시각각 모든 과정을 보고했다. 마치 놀이에 집중한 아이가 아이의 놀이에는 별 관심이 없는 엄마한테 놀이의 진척상황을 알려주듯이.

엠마누엘과 희완은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순간순간 벌어지는 상황에 즉흥적으로 대응하며 그 방의 설치작업을 기쁘게 마무리했다. 그날 이후 분명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된 것이다. 갸를롱은 그냥 '놀이'였던 것이다.

갸를롱은 거대하고 진지한, 그러나 영감에 가득 찬 '어른들의 놀이'였다. 그것은 모든 예술의 본질이고, 호모루덴스의 실체이기도 했다. 다만 특정한 관객을 전제로 하지 않으며 팔릴 것도 예상하지 않는다는 점이 달랐다. 예술가라는 직업을 가진 희완은 이 거대한 작업실에서 예기치 않은 영감과 조우하며 한없이 흥겨운 창작을 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틀 뒤 그의 여자친구 산드라가 합류했다. 그녀도 엠마누엘과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재미있는 놀이가 있다니!" 하는 표정으로 아무런 머뭇거림도 없이 자기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아 작업을 시작했다. 곧장 놀이에 신나게 빠져든 것이다.

우리 모두 어릴 적에 그렇게 놀았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가지고 진지하게 가상의 세계를 꾸며내 하루 종일 놀 줄 알았다. 여긴 그렇게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한바탕 흙장난을 할 수 있는 어른들의 놀이터였다.

- 목수정,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2008.  레디앙


훈련을 마치고 나와, 처음으로 읽었고, 기대 이상으로 감명깊게 읽었던 책이다. 그녀의 삶도, 문장도 참 씩씩하구나, 생각했다. 그의 삶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기가 굳어 있던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적셔주었다.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다시 이 책을 집어들었고, 처음 책을 읽을 때의 설렘이 거의 바래지 않아 남몰래 혼자 기분내며 좋아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은 레디앙이라는 진보매체에 저자가 연재했던 글을 토대로 하고 있다. 하여, 블로그에 글과 함께 곁들일 사진을 찾기 위해, 그 진보매체라는 레디아에 들어가 봤다. 그런데 댓글들 중 몇몇이 아주 가관이었다. 혁명의 그 날까지 인간은 개인적으로 사랑을 하거나 행복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이가 (아직도) 이렇게 많았다니! 그것도 '진보적'이라고 스스로를 자처하는 '진보적 인간'들이 말이다. 자기한테 그러는 건 상관없는데, 남의 인생에까지 저주를 퍼붓는 걸 보니 유구나 무언이었다.

삶을 잃은 (또는 잊은) 코뮤니스트들의 글은 불편하고 슬프다. 정연한 논리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완결성을 위해, 그 주변을 질식시키고 있는데,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바로 그 논리를 탄생시킨 저자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슬퍼진다. 또 한편,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고민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여, 보편적 인간이라는 (허구적) 휴머니즘의 윤리적 이상의 덫 따위에 걸린 채 자위하고 있는 것 쯤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몹시 불편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종류의 언설들에 대하여, 부정이나 긍정을 하는 것이 거의 아무런 쓸모가 없음을, 부딪친 삶을 통해 깨달아가는 나이가 되었음을 잘 알고 있다. 삶에 접근하지 않은 이론이나 담론은 기대만큼의 힘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대학때는 과연 그럴까하고 입씨름도 해보고 때론 커피나 홀짝이며 멍하니 잡상 속에 잠겨 있기도 했지만, 대학에서 발을 뺀 그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잰 체하는 이들의 이론은, 우스꽝스럽게도, 네가 밉다거나 부럽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투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삶은 지겹도록 증명하고 또 증명해왔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앞서 목수정의 글들을 오독하며 모독하는 이들은 사실 몇 초의 슬픔거리나 불편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의 그런 글에 분개하여 긴 글을 쓰고 만 나는, 어떤 때는 부끄럽기까지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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