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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08 그냥, 갑자기, 막. 6
  2. 2008.09.07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5
  3. 2008.09.06 커플 브레이킹.


교직원식당의 4인용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이번 학기가 시작된지 2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식당에 혼자 앉아 밥을 먹는 게 벌써 여러번이다.

처음에는 가방을 바로 옆자리에 놓고 밥을 먹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공간의 효율적 사용이 아닌 것 같아,
이제는 등 뒤에 가방을 받치고 최소한의 한 자리만을 차지한 채 숟갈을 든다.

막상 밥을 먹을 때는 잘만 먹어 놓고,
다음 시간에 읽어야 할 책을 읽으러 중앙도서관을 가는 길에 문득.

길을 가는 아무든지 내게,
괜찮냐고 물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 걸음 더 떼어 놓으니,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이 기다려졌고,
원망하고 싶어졌고,
아무데나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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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 6점
강양구 지음/프레시안북

"카산드라는 트로이 인에게 무시당했지만 트로이 인은 뒤늦게야 카산드라가 옳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늦었던 것이다." – ASPO 알레크렛 교수 (p. 28)


그리스 신화의 트로이 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트로이 성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전쟁을 벌였던 그리스 인들이, 어느날 갑자기 목마 한 대만 남기고 휑하니 사라졌다. 좋아라하며 성으로 목마를 들이고 축제를 벌인 트로이인들에게 광증이 있는 장님 예언가인 카산드라가 말했다. '저 목마가 트로이 멸망의 씨앗이 될 것' 이라고. 그녀의 말을 코웃음치며 들었던 트로이인들은 그 날 밤, 목마에서 나온 그리스인들의 칼에 베이고 찢기는 와중에나 잠깐 그녀의 울부짖는 얼굴이 생각났는가 몰라.

어쨌든 이 이야기의 교훈.

'비관적인 미래는 사실' 이라는 거다.
(쓸 데 없이 '일 거 같다' 요런 거 붙이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과학 전문 기자로 유명한 강양구 기자가 쓴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는 우리 시대, 자원 고갈을 예고하는 카산드라들의 종합선물세트다. '기자' 로서의 글쓰기에 충실한 이 책은 에너지 문제를 가능한 직접적으로, 최신의 이슈를 최근의 사람을 통해 접근하고 있다. 요약하면, 현대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석유 에너지의 고갈은 그야말로 현실적인 문제이며, 바이오, 태양 에너지 등을 포괄하는 대채 에너지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각 장 뒷페이지에 나오는 추천도서는 아주 좋다. 다 합치면 30권 정도 되는데, 도서관에서 직접 찾아 읽어 봤을 때는 '이런 책까지?' 라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만한 몇 권이 있긴 했지만, 대체로 읽어 볼만한 책들이었다. 저자가 적고 있듯, [파티는 끝났다] 와 [에너지 주권]은 필독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체로 나는 이 카산드라들에게 설득당한 편이다. 이 책이 나온지가 1년이 채 되지 않았고, 그 때까지만 해도 100달러에 못 미쳤던 배럴당 석유값은 100달러를 훨씬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게다가 삽질만 잘 하는 줄 알았던 대통령의 입에서 '저탄소 녹생성장' 까지 언급되는 오늘날이니 말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이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일부 희망적인 논자들과는 달리, 나는 고전적인 카산드라의 입장에 충실하게 된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문명과, 오늘날의 사회 체계 안에서 중장기적인 자원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저탄소/비탄소 발전 체계로 들어서기 전에 석유는 고갈될 것이며, 재난은 불가피할 것이다.

땡. 그럼 이제 인생 종친건가? 불가피한 재난을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사과나무 플랜테이션밖에 없단 말인가? (쩝; 별로 안 웃기다.)


내 생각은 이렇다. 요는, 위기 상황을 '상시' 로 가정하는 데 있다.

자원 고갈과 같은 위기 상황이 지속될 경우, 개인 입장에서는 위기가 닥쳤을 때 약간이라도 덜 위험한 쪽에 붙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개인이 위험에서 완전히 멀어지는 것도 아니며, 예상치 못한 사회 전체적인 붕괴와 파장이 개인들을 덮칠 것이다. 민주주의도, 개인의 권리도, 지금까지 당연시 되어 온 사회계약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포인트는 낙관적인, 그래서 책임질 수 없는 이론/정책보다는 비관적인, 그래서 대비할 수 있는 이론/정책으로 선회하는 데 있다. 이같은 비선형적인, 우발적인, 급격한 사회/환경의 변화를 가장 잘 짚어낼 수 있는 이론적 패러다임은 복잡계 (complex system) 패러다임이 아닐까. 복잡계 패러다임에 기반한 정책이라면 여전히 잘 상상이 안 되지만, 적어도 재난 이후에 나타날 사회를 예측하고 이해하는 데에는 적절히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 (묘하게 문제를 전공 영역으로 환원시키고 있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카산드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가 지금 이 순간도 지나가고 있다는 점이겠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1일 인디펜던트 지는 NASA 의 위성 사진을 인용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북극이 섬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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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 브레이킹.

Pooongkyung 2008. 9. 6. 23:36
커플 브레이킹이다.


섬뜩했다.

홍위병 사냥 때의 인민재판을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두 가지다.

하나는 충성의 대상이 사회에서 개인으로 바뀌었다는 것과,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이 '즐겁다'는 것이다.

앞에서 그것이 개인으로 바뀌었는지는 좀 생각해 볼 문제이긴 하다.
그것은 개인의 틀을 쓴 사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에 대한 침해를 이토록 적나라하게 하는 것은,
휴머니즘을 져버린 사회주의를 생각하게 한다.


이같은 모습이 동형성을 갖고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인' 이라는 단어가 바로 그것이다.

그가 공인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그에게 간섭할 권리를 가진다.
누가 우리에게 그러한 권리를 허락했는가?
게다가 익명성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되는 이 간섭은,
사실 인터넷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사회 고유의 속성이라고 보는 것이 좋다.

중세의 마녀재판에서 인민재판, 그리고 커플 브레이킹에 이르기까지.
 
관음증적인 이 독특한 취향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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