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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18 큰별이 저문다.
  2. 2009.08.17 사랑하는 사람의 방에 들어가는 것은. 2
  3. 2009.08.17 수라.

큰별이 저문다.

Pooongkyung 2009. 8. 18. 21:28


오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워낙에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였기에,
그를 기념하는 마음이 겨울 파도처럼 쉴 새 없이 몰아친다.
그렇다. 모두의 생각대로 큰 별이 지고, 한 시대가 저물었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과거를 기념하며, 과거의 테두리에 갇혀 주저앉을 필요는 없다.

한 시대가 저물면, 새로운 시대가 다시 오는 것이다.
이제는 큰 별빛아래 나의 원망을, 희망을, 분노를, 사랑을 다 담지 않을 것이다.
누구라도 속없이 한없이 믿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누군가를 한없이 미워하지도 않으련다.

다만, 지금 내 옆의 당신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을 일이다.
바라만 봐도 고개가 꺾일만큼 거대한 것을 꿈꾸지 않는,
내 옆의 작은 당신과 손 잡은 작은 내가 날마다 무엇을 꿈꾸고 어떻게 숨쉬는지를 물을 일이다.

..저마다 작은 별이 되어 떼지어 별자리 그리며 한껏 빛내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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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의 방에 들어가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다. 아무리 대단한 영화도, 그 어떤 기상천외한 롤러코스터도 그것에 필적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를테면 거기에는 냄새가 있고 아주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역사가 있다.

무엇보다 그 방은 삼차원의 공간으로 존재한다. 나는 뚜벅뚜벅 그 안으로 들어가 그것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물건들은 만져볼 수 있으며 작은 것이라면 슬쩍 가져갈 수도 있다. 천장은 그녀가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처음으로 보는 바로 그 천장이며 침대는 그녀가 자신의 온몸을 스스럼없이 던지는 바로 그 침대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방에서 우리는 얼마간 탐정이고, 또 얼마간은 변태이며, 그리고 또 얼마간은 수집가다. 방은 그녀에 대해 말해주는 단서들로 가득하며 그것들은 나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단서들은 하나같이 매혹적이다. 인기가수의 팬들이 아수라장을 틈타 그의 땀이 묻은 선글라스를 낚아채듯 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손댄 그 어떤 것을 내 소유로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 김영하, 퀴즈쇼,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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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

BookToniC 2009. 8. 17. 00:32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 백석, 정본 백석 시집-사슴,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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