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의 방에 들어가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다. 아무리 대단한 영화도, 그 어떤 기상천외한 롤러코스터도 그것에 필적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를테면 거기에는 냄새가 있고 아주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역사가 있다.

무엇보다 그 방은 삼차원의 공간으로 존재한다. 나는 뚜벅뚜벅 그 안으로 들어가 그것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물건들은 만져볼 수 있으며 작은 것이라면 슬쩍 가져갈 수도 있다. 천장은 그녀가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처음으로 보는 바로 그 천장이며 침대는 그녀가 자신의 온몸을 스스럼없이 던지는 바로 그 침대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방에서 우리는 얼마간 탐정이고, 또 얼마간은 변태이며, 그리고 또 얼마간은 수집가다. 방은 그녀에 대해 말해주는 단서들로 가득하며 그것들은 나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단서들은 하나같이 매혹적이다. 인기가수의 팬들이 아수라장을 틈타 그의 땀이 묻은 선글라스를 낚아채듯 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손댄 그 어떤 것을 내 소유로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 김영하, 퀴즈쇼,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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