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는 전태일, 조영래와 함께 남양주 모란공원에 영원히 잠들었다. 사실 그에 대해 내가 가진 기억은, 안개처럼 뿌옇고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대개, 그 기억들은 정치인들에게 있어 실패라고 여겨지는 것 뿐이다. 2002년과 2007년 대선, 18대 총선에서의 낙방.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연신 콧물을 훔치며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던. 비뚤어진 고개와 어눌한 말투. 하나하나 세어보면 어쩌면 그렇게 속터지고, 아프고, 무기력한 기억들 뿐인지. 그런 흩어진 기억들이 모여, 김근태라는 기억을 꾸린다. 부치지 않은 편지를, 아침이슬을 부를 때마다, 그는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나의 아비가 있었다. 그보다 한 살 아래인 나의 아비는, 그처럼 그 시대에 깊은 상처를 입은 이였다. 남영동을 출간한 출판사에 나의 아비가 있었다. 아비는 평생동안 책을 팔았으나, 책으로 돈도 이름도 사람도 남기지 못했다. 그의 이름은 자주, 가려져 있었으며, 그의 삶은, 자주, 동지라는 이름의 타인들에게 난도질 당했다. 그래도 그는 살아 있고, 오직 살아 있음으로 그의 삶의 무게와 가치를 지켜내고 있다. 내가 아비를 원망하나 원망하지 않듯이, 동정하나 동정하지 않듯이, 또한 그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갖는 애착은, 나의 아비에게 갖는 애착과 아주 가깝다. 나의 아비가, 생물학적 시간을 멈춘다 하여 내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듯이, 그 역시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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