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BookToniC | 112 ARTICLE FOUND

  1. 2008.11.10 밤이면 쥐들도 잠을 잔다. (1) 2
  2. 2008.10.27 포옹.
  3. 2008.10.27 인디언이 되고 싶은 마음.


고독한 담벼락에 음푹 패인 창문이 입을 벌려 초저녁 햇살을 가득 받아 검붉은 안을 드러내고 있었다. 먼지 구름은 가파르게 솟아오른 굴뚝 잔해 사이로 가물거렸다. 황량한 폐허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갑자기 날이 더 어두워졌다. 그는 누군가 다가와서 자기 앞에 조용히 시커멓게 서 있다고 느꼈다. 이제 그들이 나를 데려가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살며시 실눈을 떠서 보았을 때, 그의 눈에는 약간은 초라한 옷을 걸친 다리통 두 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다리통은 상당히 구부정하게 서 있어서, 그는 그 사이로 뒤에 있는 물체들을 바라볼 수도 있을 정도였다. 용기를 내어 실눈을 떠서 그는 그 다리통의 주인공을 올려다보고는 그가 중년 사내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칼 한 자루와 바구니 하나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는 약간의 흙이 묻어 있었다.
 너 여기서 자고 있었지? 사내가 그렇게 물으며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위르겐은 실눈을 뜨고 그 사내의 다리통 사이로 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자고 있지 않았어요. 전 여기서 망을 봐야 하거든요.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커다란 막대기는 망보는 데 필요해서 갖고 있었구나?
 네, 위르겐은 용기를 내어 대답하고는 막대기를 꼬옥 붙들었다.
 대체 뭘 망보는 거야?
 이야기할 수 없어요. 그는 두 손으로 막대기를 꼬옥 붙잡았다.
 돈을 주으려고 그런 거지, 안 그래? 사내는 바구니를 내려놓으며 칼을 바지의 엉덩이 부분에 대고 이리저리 문질렀다.
 아니에요. 절대 돈을 주으려고 그런 건 아니에요. 위르겐이 경멸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을 위해서였죠.
 그래, 대체 뭐야?
 말씀드릴 수 없다니까요. 어쨌든 돈과는 상관없는 거예요.
 그래, 뭐 그렇다면 말하지 마. 나도 당연히 말해주지 않겠어. 여기 이 광주리에 내가 뭘 가지고 있는지 말이야. 사내는 발로 광주리를 툭툭 차며 칼을 철컥 잡았다.
 흥! 바구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혼자서도 알아맞힐 수 있어요. 토끼 먹이죠. 위르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야, 놀랍군 그래! 사내는 놀라서 그렇게 말했다. 너 아주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대체 몇 살이야?
 아홉 살이에요.
 우와, 이것 참. 그래 아홉 살이라구. 그렇다면 삼에다 구를 곱하면 얼만지 아니?
 알죠, 하고는 위르겐은 시간을 벌기 위하여 그런 건 정말 쉬워요, 라고 말했다. 그는 사내의 다리통 사이로 내다보았다. 삼 곱하기 구라고 하셨죠? 위르겐은 다시 한번 물으며 이십칠이라고 대답했다. 그런 건 금방 알아요.
 맞다, 사내가 말했다. 내가 갖고 있는 토끼는 스물일곱 마리란다.
 위르겐은 입을 동그랗게 하며, 스물입곱 마리요? 라고 물었다.
 보여줄 수도 있어. 아직 새끼도 많지, 볼래?
 볼 수 없어요. 전 망을 봐야 하니까요. 위르겐은 불안하게 말했다.
 계속? 밤에도? 사내가 물었다.
 밤에도요. 계속. 언제나. 위르겐은 굽은 다리를 흝어 올라가며 올려다보았다. 벌써 토요일부터인 걸요, 라고 그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넌 집에도 전혀 안 가니? 밥은 먹어야 할 것 아니야.
 위르겐은 돌 하나를 들어올렸다. 거기에는 빵 한쪽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양철상자도 하나 있었다.
 너 담배 피우니? 사내가 물었다. 파이프도 있어?
 위르겐은 막대기를 꼭 붙잡고 겁먹은 듯이 말했다. 전 말아 피워요. 파이프는 싫어요.
 안됐군. 사내는 바구니를 향해 몸을 굽혔다. 조용히 하고 이 토끼들을 한번 보아도 좋아. 무엇보다도 이 어린 새끼들을 한번 보렴. 한 마리 골라 가져도 좋을 텐데. 하지만 넌 여기서 꼼짝 말고 있어야 하니 원.
 네. 위르겐은 처량하게 말했다. 네, 맞아요. 
 사내는 바구니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자 그래, 네가 여기 남아 있어야 한다면, 안됐구나, 라고 사내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몸을 돌렸다. 남한테 알리지만 않는다면 말씀드리겠어요. 쥐 때문에 저는 여기서 망을 보는 거예요. 위르겐이 그때 재빨리 말했다.
 굽은 다리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쥐 때문이라고?


    - 볼프강 보르헤르트, "밤이면 쥐들도 잠을 잔다", <5월에, 5월에 뻐꾸기가 울었다>
AND

포옹.

BookToniC 2008. 10. 27. 17:24

 어느 날, 조용히, 아무 예고도 없이 그녀가 말했다. "나 좀 안아 줄래요?" 그는 물론 그녀를 안았다. 그는 자기 몸이 빈틈 없이 여자의 몸에 맞도록 두 팔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머리카락, 눈꺼풀, 코에 입맞춤하면서. 그리고 물었다. "뭐 잘못된 일이라도 생겼어? 무슨 걱정거리라도?"
 그녀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의 팔은 남자를 꼬옥, 아주 꼬옥 끌어안고 있었다.
 여러 해 전 그에게 짜준 털 스웨터의 까칠한 포근함을 뺨으로 느끼면서. 그들이 마악 사랑을 시작했던 그 애인 시절에.
 몇 분이 지났다. 이상도 해라. 그는 그녀가 떨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깊은 땅 밑의 떨림 같은 것이었다. 그는 다시 물었다. "차 사고라도 있었어?" 그리고 다시, "누가 당신을 위협했어?" 그리고 다시, "왜 그래?"
 그녀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를 더 꼬옥 붙들었다.
 그는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마치 위험 앞에 섰을 때처럼 그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여보, 나 당신 사랑해. 무슨 일이지?"
 그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게 살며시, 아주 조금만, 그녀의 몸을 밀어내 보려고 했다.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를 단단히, 단단히,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그냥 안고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를 들릴락말락한 것이어서 그는 그 말소리를 들었다기보다는 몸으로 느꼈다.
 "그래, 그래. 그런데 왜 그러지?"
 이 포옹을 그는 몇 분이나 계속할 수 있을까? 오분? 십분? 60분? 1천분? 그는 용기있게 말했다. "음. 나 여기 있어, 여기."
 밖에는 생각지도 않던 비가 창문을 두드렸다. 아니, 비가 아니라 햇살이었을까? 그 갑작스런 눈부심은?

- 조이스 캐롤 오츠, <포옹>
AND


인디언이 되었으면! 질주하는 말 잔등에 잽싸게 올라타 비스듬히 공기를 가르며, 진동하는 대지 위에서 전율을 느껴보았으면. 마침내 박차를 내던질 때까지, 실은 박차가 없었으니까. 마침내는 고삐를 집어던질 때까지, 실은 고삐가 없었으니까. 그리하여 눈앞에 보이는 땅이라곤 매끈하게 풀이 깎인 광야뿐일 때까지, 이미 말 모가지도 말 대가리도 없이.
- 프란츠 카프카, <인디언이 되고 싶은 마음>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