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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2 저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2. 2009.08.17 사랑하는 사람의 방에 들어가는 것은. 2
  3. 2009.08.17 수라.


그가 발음하는 단어와 그 목소리에는 뭔가 희한한 점이 있었다.

그의 모습 속에는 딱한 마음이 생기게 하는 뭔가가 있어서, 한번은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놀리던 젊은 관리 하나가 뭔가에 찔린 것처럼 화들짝 놀라 그를 놀리기를 그만두었으며, 그때부터 아까끼 아까끼예비치 앞에서 이 젊은 관리의 태도가 바뀌어 버린 것 같았고, 젊은 관리 자신의 모습도 달라진 것 같았다.

그 후로 이 젊은 관리는 고상한 상류층 인사들로 여귀고 사귀었던 동료들과도 어떤 이상한 힘에 의해서 멀어지게 되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가장 즐거운 순간에도 머리가 벗겨진 조그만 관리 하나가 "저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왜 그렇게 놀리는 겁니까?" 라고 애처롭게 말한 것이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애절한 말 속에 '나는 너의 형제야!'라는 말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 니꼴라이 고골, 외투, 산호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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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의 방에 들어가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다. 아무리 대단한 영화도, 그 어떤 기상천외한 롤러코스터도 그것에 필적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를테면 거기에는 냄새가 있고 아주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역사가 있다.

무엇보다 그 방은 삼차원의 공간으로 존재한다. 나는 뚜벅뚜벅 그 안으로 들어가 그것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물건들은 만져볼 수 있으며 작은 것이라면 슬쩍 가져갈 수도 있다. 천장은 그녀가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처음으로 보는 바로 그 천장이며 침대는 그녀가 자신의 온몸을 스스럼없이 던지는 바로 그 침대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방에서 우리는 얼마간 탐정이고, 또 얼마간은 변태이며, 그리고 또 얼마간은 수집가다. 방은 그녀에 대해 말해주는 단서들로 가득하며 그것들은 나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단서들은 하나같이 매혹적이다. 인기가수의 팬들이 아수라장을 틈타 그의 땀이 묻은 선글라스를 낚아채듯 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손댄 그 어떤 것을 내 소유로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 김영하, 퀴즈쇼,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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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

BookToniC 2009. 8. 17. 00:32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 백석, 정본 백석 시집-사슴,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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