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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29 The kiss of Judas
  2. 2008.10.27 포옹.
  3. 2008.10.27 내가 글을 쓰는 이유.


"Friend, do what you are here to do."
-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26: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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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BookToniC 2008. 10. 27. 17:24

 어느 날, 조용히, 아무 예고도 없이 그녀가 말했다. "나 좀 안아 줄래요?" 그는 물론 그녀를 안았다. 그는 자기 몸이 빈틈 없이 여자의 몸에 맞도록 두 팔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머리카락, 눈꺼풀, 코에 입맞춤하면서. 그리고 물었다. "뭐 잘못된 일이라도 생겼어? 무슨 걱정거리라도?"
 그녀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의 팔은 남자를 꼬옥, 아주 꼬옥 끌어안고 있었다.
 여러 해 전 그에게 짜준 털 스웨터의 까칠한 포근함을 뺨으로 느끼면서. 그들이 마악 사랑을 시작했던 그 애인 시절에.
 몇 분이 지났다. 이상도 해라. 그는 그녀가 떨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깊은 땅 밑의 떨림 같은 것이었다. 그는 다시 물었다. "차 사고라도 있었어?" 그리고 다시, "누가 당신을 위협했어?" 그리고 다시, "왜 그래?"
 그녀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를 더 꼬옥 붙들었다.
 그는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마치 위험 앞에 섰을 때처럼 그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여보, 나 당신 사랑해. 무슨 일이지?"
 그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게 살며시, 아주 조금만, 그녀의 몸을 밀어내 보려고 했다.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를 단단히, 단단히,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그냥 안고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를 들릴락말락한 것이어서 그는 그 말소리를 들었다기보다는 몸으로 느꼈다.
 "그래, 그래. 그런데 왜 그러지?"
 이 포옹을 그는 몇 분이나 계속할 수 있을까? 오분? 십분? 60분? 1천분? 그는 용기있게 말했다. "음. 나 여기 있어, 여기."
 밖에는 생각지도 않던 비가 창문을 두드렸다. 아니, 비가 아니라 햇살이었을까? 그 갑작스런 눈부심은?

- 조이스 캐롤 오츠,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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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사실 나에게 문학이란 수학처럼 몽매한 것이다. 한참을 들여다봐도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끝내 해답을 들여다봐야만 비로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그런 것이다. 따라서 나에겐 문학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과 회의가 공존한다. SONY-MD나, Olympus C-5050처럼, 다른 많은, 나를 거쳐갔던 또는 걸쳐져 있는 것들처럼, 이것 역시 악세사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보다는 조금 더 나은 듯한, 어떤 수업을 듣는지를 통해서 나를 표상하는 것도 대학교까지일텐데. 결국 어디에도 몰입하지 못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미끄덩 거리며 그렇게 살아가려는걸까, 나는. 

인간에 대한 긍정의 뉘앙스를 풍겼던, 인간에게 겹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차라리 상처다. 심하지 않았으면 하는, 적절한 약만 먹어서 끝나는 것이었으면 하는, 울지 않아도 되는, 웃어 넘기고 싶은. 상처다. 어딘가 숨을 수 있는 곳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도망쳐 숨을 것이다. 내 앞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서라도. 인간의 겹을 벗겼을 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 끝에 남겨진 것을 보기가 두려운 것이다.

아버지들은 말했다. 있는 힘껏, 삶 앞에 맞서라고. 그것을 변화시키라고. 30년대를 이겨낸, 80년대를 딛고 선 아버지들은 늘 그렇게 말해왔다. 그러나 삶 앞에 도망칠 수밖에 없는 이는 어떤가. 그래, 까놓고 말해 나는 미당을 동정해왔다.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는, 이 호기로운 문장의 의도는 분명코 불순하다. 그러나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의 바람은 더러운 것이다. 그래서. 검댕투성이인 그에게, 그 시대를 살다 간, 하얀 옷을 입은, 있었는지도 모르는, 민중의 원망을 들이밀어야 할 정당성이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나는 지킬 수 없는 인간이라면 차라리 포기해버릴려고, 파괴해버리려고. 있는 힘껏 달아나고, 내 목에 칼을 들이밀 때까지 숨으려고. 그 때 문학은 나의 망치이고, 나의 다리이고, 나의 피부인 것이다. 나에게 굳이,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단지 이것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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