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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13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
  2. 2011.05.12 혼동.
  3. 2011.05.12 꿈.




가끔씩 오늘 같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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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동.

BookToniC 2011. 5. 12. 22:22

가을밤에 뒷마당에 서 있는데
풀벌레가 울었다
바람이 일고
시누대 댓잎들이 바람에 쓸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풀벌레 소리
댓잎 소리
또 한번은
겹쳐
서로 겹쳐서
그러나 댓잎 소리가 풀벌레 소리를 쓸어내거나
그러나 풀벌레 소리가 댓잎 소리 위에 앉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혼동이라는
그 말에
큰 오해가 있음을 알았다
혼동이라는
그 말로
나를 너무 내세웠다

- 문태준, 그늘의 발달,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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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Pooongkyung 2011. 5. 12. 03:31

아침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밝은 목소리였다. 두어마디 나누다가, 머뭇거리는 것 같아서 "너 아직 출근 안 했구나" "응. 엄마가 불러." 그리곤 그 사람은 '내가 나중에 전화 할께', 하고 끊었다. 그 사람 그대로여서, 황당하면서도 다행이라고 느꼈다. 생생해서, 눈을 뜨자마자 곤히 잠들어 있던 핸드폰을 더듬어 통화내역을 확인해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번 주말에 올라오냐는, 이틀 전에 받은 후배의 문자, 초파일 시간외 근무를 찍어달라던 실장의 전화가 최신이었다.

그렇게 눈을 뜨자 다시 잠이 들기 어려웠다. 불을 켜자, 방바닥에는 작년 여름 숙소에 개미떼처럼 창궐했던, 노래기가 꾸물거리며 기타 옆을 지나고 있었다. 어느새,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처럼 경고 없이, 일상처럼, 작고 꼬물거리며, 부끄러움 없이 내 앞에 나타날 계절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때마다 휴지를 풀어 지그시 눌러주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들의 고향에 락스를 뿌리거나 소독약을 퍼붓거나, 군홧발로 짓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등장은 봄이 가고 여름이 찾아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그 계절을 봄처럼 맞이하는 수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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