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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09 작심.
  2. 2011.05.09 All that Skate Spring 2011.
  3. 2011.05.08 리얼리즘.

작심.

BookToniC 2011. 5. 9. 23:38

모든 약속은 보름 동안만 지키기로 했네
보름이 지나면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다른 데를 보듯 나는 나의 약속을 외면할 거야
나의 삶을 대질심문하는 일도 보름이면 족해
보름이 지나면
이스트로 부풀린 빵 같은 나의 질문들을 거두어 갈거야
그러면 당신은 사라지는 약속의 뒷등을 보겠지
하지만, 보름은 아주 아주 충분한 시간
보름은 나를 당신을 부드럽게 설명하는 시간
그리곤 서서히 말들이 우리들을 이별할 거야
달이 한 번 사라지는 속도로
그렇게 오래

- 문태준, 그늘의 발달,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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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지인의 지인을 통해서'라는 까마득한 거리를 가로질러, 오늘 저녁 6시에 나는 친구들과 함께 잠실 실내체육관 24구역 9번줄에 앉아 형형색색 형광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올댓스케이트, 어쩐지 마법같았던.

일단 자리는 생각보다 좋았다. 한참 늦게 구해진 표라 기대가 적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아이스링크와 전광판, 배경영상이 한 눈에 들어오는 괜찮은 자리였다. 선수들이 입장하고 퇴장하는 방향이어서, 그들의 눈길과 인사를 다른 곳에 비해 적게 받은 게 좀 아쉽긴 했지만, 아,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그 시간, 그 공간에서 내가 그들과 함께 숨을 쉬고 있었단 게 문제였지. 다시 그 떨림을 맛볼 수 있단 게, 너무 고맙고 그립고 다행이고 그랬다.

마지막 날이어서인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조금 지친 기색이 보이긴 했지만, 연아도, 그녀의 동료들도 예쁘고 멋졌다. 인상적이었던 건 쥬베르인데, 수트 입고 little love 할 때는 남자가 봐도 기가 차게 멋있었다. 물론 어딘지 모르게 프랑스 정통 까망베르 치즈가 두껍게 토핑(?)되어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으나, 뭐, 그건 또 그거대로. 일리아 쿨릭은 쥬베르나 랑비엘처럼 열광적인 환호를 받지는 못했으나, 몸짓에 절도가 있고 노련했다. 장단과 장하오의 here i am는 애절했고, 랑비엘의 bring me to life는 폭발적이었다. 쇼는 즐거웠다.

연아는 아픔을 참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그녀의 연기를 볼 때는 조마조마했고, 안쓰러웠다. 아파도 아픔을 누르며, 무대에서는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웃을 수 있는 아이, 그것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녀의 연기를 보는 게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내가 이 정도인데, 그녀의 팬들은,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저 더 무리해서 다치지만 않았으면, 내내 그 마음이었다.

2부 공연은 개개의 공연 전에, 스케이터들이 생각하는 스케이팅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짤막하고 보여주는 것으로 오프닝을 하더라. 스케이팅은 나를 흥분시킨다고, 스케이팅은 꿈이라고, 사랑이라고.

그래, 그들 말대로, 어쩌면 이 작은 링크는 삶의 은유다. 제한된 시간, 관객 앞에서 나 자신을 온전히 쏟아낼 공간, 인간의 가능성을 뿜어내는 공간, 박수를 받고 야유를 받으며, 등장하고 퇴장할 공간, 넘어지고 다시 일어날 공간. 차갑지만, 부드러운, 공간. 이 은유는 뻔한데, 요즘은 뻔한게 그립고, 그래서 난 그 앞에서 번번이 무력해지곤 한다. 오늘도 다를 바 없었다.

청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반쯤은 졸며, 빈 링크를 맴돌았다. 친구들도 있고 사랑하는 이도 모두 다 있었다. 모든 것이 지금 이대로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모두 변해 가겠지만. 막을 수 없었지만.

어쩐지 마법같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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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BookToniC 2011. 5. 8. 08:28

우리가 비평용어로, 때론 정치나 시사용어로 즐겨 사용하는 리얼리즘은 사실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양심적 리얼리즘과 의식적 리얼리즘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둘은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서로 상이한 철학적 입장, 대응이론과 통일이론에서 기인한다.

대응이론은 경험론적이고 인식론적이다. 이것은 외부세계의 존재에 대한 소박하고도 상식적인 리얼리스트의 신념을 내포하는 것이며, 관찰과 비교에 의하여 그 세계를 정확히 알게 되리라고 상정한다. 진리는 단정된 현실에 대응하고 접근하는 것이며 이를 충실하고 정확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여 실증하고, 한정짓고, 정의를 내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실증주의자와 결정론자들의 진리가 그것이다. 이 이론은 다수파의 확실한 동의를 얻어 자신을 얻으며, 따라서 그것을 객관적이라고 부른다.

통일이론에서는 이와 반대로 인식과정이 직관적 이해에 의하여 가속화되거나 단축, 생략된다. 진리란 기록에 의하여 실증하고 분석함에 의하여 도달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다는 확신에 의하여 조성되는 기성품적인 종합명제로 통용된다. 증거는 자신으로 대체된다.

첫째 경우에 있어서 진리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진실하지만, 둘째 경우는 어떤 선線이나 칼날이 곧고 결함이 없을 때에 진실하다 말할 수 있는 의미에서의 진리이다. 이 경우 단순히 진리를 나타내거나 암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진리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현실이 마치 진리라는 복병의 습격을 받고 체포된 형국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지각행동 바로 그 속에서 발견되고 어느 의미에서는 창조되는 것이다. 전자는 포획하고 후자는 해방한다.

대응이론은 양심적 리얼리즘의 철학적 바탕이다. 18세기 자연과학의 발달과 프랑스 미술의 성취에게서 자극받은 발자크, 스탕달 등으로부터 추동되어 에밀 졸라에게서 절정에 이른 리얼리즘이 바로 양심적 리얼리즘이다.

기록적이라든가 사실소설이라든가 고백시에 각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 리얼리즘의 고민하는 양심이다. 이것은 작품 내부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부당하게 외부로부터 가해진 가치이며, 작품내용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의 허세에 부여된 것에 불과하다.

즉, "예술의 제1목적은 현실재생이다." Chernishevsky.

양심의 리얼리즘이 그 힘의 전부를 그 단순성으로부터 유출하였음에 반하여, 의식단계의 리얼리즘은 그 자체의 복잡성을 자각함에 의존한다.

리얼리즘 통일이론은 문학의 자아, 문학의 인식이다. 이 경우 리얼리즘은 모방에 의하여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에 의하여 성취된다. 인생의 소재를 다루되 그 소재를 상상력의 중개에 의하여 단순한 사실성의 영역으로부터 보다 고차적인 질서로 변화시키는 창조이론이다.

결국, "최종적 믿음은 허구를 허구라고 알면서도 믿는 일이다.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허구임을 알고 그것을 기꺼이 믿는다는 것은 절묘한 진실이다." Wallace Stevens

- Damian Grant, Realism, Methuen(서울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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