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엠피를 건네준다는 그 사람은 내 옛사람과 몹시 닮았다.
진아라고, 그 이름은 내 옛사람의 언니 이름과 닮았고,
그 넉넉한 웃음이, 그러나 분명히 나름대로는 칼을 지니고 있을.
내 가슴팍에서 멈추는 아담한 키와, 그리고 허름한 백팩까지.
그리고 성의껏 이야기하는 그 태도도, 그 말도,
옛사람을 생각나게 해서.
나는 그 앞에서 꽤나 횡설수설을 했다.
분명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
오래전부터 알았던 사람처럼, 그리고 앞으로도 알고 지낼 사람처럼.
우습게도 그 사람이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면서,
고작해야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인데,
내게 자신의 피엠피를 빌려주려고 만난 사람인데.
3호선 안국역에서 그 사람을 보내고는 식은 밥처럼 한참을,
그 역에 담겨 있었다.
그 사람을 보고 싶었다.
이스라엘에서 울며 죽을지도 모른다며 떠나지 말라던 옛사람.
그렇게 매몰차게 버려지고도 한국에 돌아와,
다시 만나고 싶었다고 얼굴을 흐리며 삶을 내던지며 괴로워했던 옛사람.
비틀거리며 잔뜩 실연감에 취했던 그 사람,
그 사람을 그렇게 보내고 돌아섰던 나.
그렇게 보내고 다시는 만나지 못한 그 사람이,
이렇게 보고 싶었다. 두서없이 일단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상처를 내고 후비고 지졌던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오늘은 당신을 꼭닮은 사람을 만났다고.
그리고 그 앞에서 먹먹하게 울고만 싶었다.
이 비겁한 사람을 당신은 용서해 줄 건가요?
나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돌아갈 수 없을까요?
그리고 끝을 모를 안개 속으로 몸을 던지고 싶었다.
비틀거리며 잔뜩, 돌아섰던 그 날의 당신처럼.
그리고서 내가 얼마나 비겁한 놈인지,
그래서 더 가라앉았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또 뭐냐고.
그래서 이 사람에게서 떠날 수 있겠냐고.
도대체 누구에게 당당할 수 있겠냐고.
나는 어딘가에서 걸릴까.
다시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아득한 밤길에서, 콜밴 안에서, 새로 뚫린 고가도로에서,
겁없이 내비게이션에 시선을 뺏긴 콜밴기사와 함께,
차라리 이대로 삶이 멈춰버렸으면.
이대로 착한 형으로, 아들로, 남자친구로, 교관으로, 선배로, 친구로.
멈춰버렸으면 하고,
질끈 감은 눈을 뜰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