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지인의 지인을 통해서'라는 까마득한 거리를 가로질러, 오늘 저녁 6시에 나는 친구들과 함께 잠실 실내체육관 24구역 9번줄에 앉아 형형색색 형광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올댓스케이트, 어쩐지 마법같았던.

일단 자리는 생각보다 좋았다. 한참 늦게 구해진 표라 기대가 적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아이스링크와 전광판, 배경영상이 한 눈에 들어오는 괜찮은 자리였다. 선수들이 입장하고 퇴장하는 방향이어서, 그들의 눈길과 인사를 다른 곳에 비해 적게 받은 게 좀 아쉽긴 했지만, 아,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그 시간, 그 공간에서 내가 그들과 함께 숨을 쉬고 있었단 게 문제였지. 다시 그 떨림을 맛볼 수 있단 게, 너무 고맙고 그립고 다행이고 그랬다.

마지막 날이어서인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조금 지친 기색이 보이긴 했지만, 연아도, 그녀의 동료들도 예쁘고 멋졌다. 인상적이었던 건 쥬베르인데, 수트 입고 little love 할 때는 남자가 봐도 기가 차게 멋있었다. 물론 어딘지 모르게 프랑스 정통 까망베르 치즈가 두껍게 토핑(?)되어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으나, 뭐, 그건 또 그거대로. 일리아 쿨릭은 쥬베르나 랑비엘처럼 열광적인 환호를 받지는 못했으나, 몸짓에 절도가 있고 노련했다. 장단과 장하오의 here i am는 애절했고, 랑비엘의 bring me to life는 폭발적이었다. 쇼는 즐거웠다.

연아는 아픔을 참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그녀의 연기를 볼 때는 조마조마했고, 안쓰러웠다. 아파도 아픔을 누르며, 무대에서는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웃을 수 있는 아이, 그것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녀의 연기를 보는 게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내가 이 정도인데, 그녀의 팬들은,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저 더 무리해서 다치지만 않았으면, 내내 그 마음이었다.

2부 공연은 개개의 공연 전에, 스케이터들이 생각하는 스케이팅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짤막하고 보여주는 것으로 오프닝을 하더라. 스케이팅은 나를 흥분시킨다고, 스케이팅은 꿈이라고, 사랑이라고.

그래, 그들 말대로, 어쩌면 이 작은 링크는 삶의 은유다. 제한된 시간, 관객 앞에서 나 자신을 온전히 쏟아낼 공간, 인간의 가능성을 뿜어내는 공간, 박수를 받고 야유를 받으며, 등장하고 퇴장할 공간, 넘어지고 다시 일어날 공간. 차갑지만, 부드러운, 공간. 이 은유는 뻔한데, 요즘은 뻔한게 그립고, 그래서 난 그 앞에서 번번이 무력해지곤 한다. 오늘도 다를 바 없었다.

청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반쯤은 졸며, 빈 링크를 맴돌았다. 친구들도 있고 사랑하는 이도 모두 다 있었다. 모든 것이 지금 이대로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모두 변해 가겠지만. 막을 수 없었지만.

어쩐지 마법같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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