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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7.03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2. 2011.07.01 그리움.
  3. 2011.06.29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러니까, 하염없이 축축해지는 오늘은,
장필순/오소영 공연날. 장맛비 흐느껴 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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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BookToniC 2011. 7. 1. 03:32

그립다는 그리다의 내적 침잠이다. 그리고 그리워하다의 고치이다. 명사 그리움, 또는 그립다의 명사형 그리움은, 그러므로, 그림의 내적 침잠이자 그리워함의 고치이다. 그 그리움은 결핍으로서의 사랑이다. 나는 네가 그립다를 네가 내게 결핍돼 있다라고 표현하는 프랑스인들은 그 점에서 더 직설적이고 고백적이다.

그리움은 또 금제로서의 사랑이자 박탈로서의 사랑이며 회한으로서의 사랑이자 격절로서의 사랑이다. 신경숙의 서늘한 고백에 따르면 "사랑은 점점 그리움이 되어갔다. 바로 옆에 있는 것, 손만 뻗으면 닿는 것을 그리워하진 않는다. 다가갈 수 없는 것, 금지된 것, 이제는 지나가버린 것,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향해 그리움은 솟아나는 법이다. ... 그리움과 친해지다보니 이제 그리움이 사랑 같다. 사랑이 와서, 우리들 삶 속으로 사랑이 와서, 그리움이 되었다."

그 마지막 문장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고 슬프다: 사랑이 와서, 우리들 삶 속으로 사랑이 와서, 그리움이 되었다.

- 고종석,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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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7년만인가. 일과 후 아이들과 함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를 봤다. 이번에 새로 산 고가의 음향장비가 설치된 해질 무렵의 학과장은 꽤 만족스러운 영화관으로 재탄생했다. 몇 번 있던 섹스 장면에서는 야근하던 이들이 토끼눈을 하고 문을 두드려 해명하느라 고생하기도 했으니.

하지만 막상, 조제..는 아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엔딩 크레딧까지 다 보고 난 뒤에 불을 켰는데, 몇몇은 한참 졸린 눈이었고 몇몇은 또 어리둥절해 있었다. 감상을 나누면서는, 넘어가야 할 장면에서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끄는 것 같다거나, 일관적이지 않은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배치된 것 같다거나, 너무나도 낯선 감정이라 이해가 잘 안 된다고 털어놓았다.

이해한다. 20대 초반의 나 역시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음을 기억하기 때문에. 사실, 7년만에 다시 만난 조제는 내 기억 속과는 꽤나 다른 모습이어서, 나역시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은 채 모호한 이미지로 남아 있던 장면들이 애틋하게 부풀어 올랐고, 몇몇 장면에서는 눈물을 밀어 넣느라 꽤나 고생했던 것이다. 

나는 이'들'의 장애가 눈물겹다. 조제같이 몸에 새겨진 장애뿐 아니라, 모든 사람은, 츠네오처럼, 무심히 그리고 오롯이 상처를 입고 입히는 마음에 새겨진 장애를 갖기 때문이다. 즉, 사랑하는 이들은 모두 장애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눈에 거슬릴 정도로 도드라진다거나, 속옷처럼 꼭꼭 숨겨져서 평소에 드러나지 않다거나 하는 정도의 차이, 종류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장애는 모든 사랑에 빠진 이들의 본성에 가까이 있다. 따라서 모든 사랑하는 이들은 어느 정도는, 얼마 정도는 그 사람과 더불어 그 또는 그녀의 장애를 끌어안지만, 알다시피, 언젠가는 지치고, 마침내 한몸처럼 꼭 껴있던 손깍지를 풀어버린다.

"형, 지쳐버린 거 아냐." (류지)

사랑의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모든 사랑하는 이들은 장애를 지니고, 장애의 본질적인 속성은 불치다. 그것은 고쳐질 수 없는 것이다. 고쳐질 수 없는 것을 몸에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그 또는 그녀의 불치를 교정하려는 모든 노력은, 종결에 이르기까지의 갈등의 양상에만 차이를 둘 뿐, 필연적으로 실패할 운명에 놓인다. 기껏해야, 사람은 그것을 보듬고 쓸어안고 위로할 뿐이다. 그러니까, 깊은 사랑은 그것을 고친다기 보다는 함께 두고 보는 것에 있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것이다.

조제를 떠난 츠네오의 오열은 사랑의 그런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알고 있던 진실을 배신했기 때문에, 그런 자신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그를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사랑이라는 도시의 불문율이다. 사랑이라는 도시의 시민권을 획득한 이들은 한평생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배신하고, 위로받은 만큼 상처를 짊어지고 살아갈 것을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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