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매달려.

Pooongkyung 2008. 9. 15. 09:44

외가에서 돌아오는 길은 달이 밝았다.

뒷자석에 비스듬히 누워 차창 너머로 걸려 있는 밤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어쩐지 옛기억들이 달빛 가득한 밤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가감없이 천둥처럼 짖었던 개에게서 도망쳐
길고 긴 골목길을 돌아온 나 처음 살던 빨간문집은 굳게 닫혀 있었다.
누군가 손을 잡아줄 때까지 문 앞에 쭈그려 앉아 울던 다섯살의 기억.
오랫동안 길러준 이의 집을 허락을 받고서야 갈 수 있었고,
이유도 모른 채 용서해달라고 잘못했다고 빌었던 언젠가,
전동시장의 작은 칼국수 집에는 잔뜩 고명을 올린 그릇을 두고 한 여자가 울고 있었다.
나는 출구를 몰랐고, 증오를 배운 대신 체념을 배웠다.

달빛을 맞은 기억들은, 애처롭고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아빠, 여기를 좀 봐요.
아버지, 지구본을 사주세요.

지구본을 돌렸다가 멈추는 어디에선가 나도 멈추고 싶었다.
고향 없는 아이로 언제고 언제고 떠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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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BookToniC 2008. 9. 12. 22:12


체력육성 수업이 2주째 연이어 휴강을 했다. (참고로 개강한지 2주 되었다.)
뜻하지 않게 주어진 시간을 밥을 먹고, 도서관에서 몇몇 책들을 뒤적거리는데 썼다.

그 중의 하나가 이순신의 난중일기.

말 그대로 '일기' 이고, 박 모 장군님처럼 임진왜란과 이 분의 행적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라. 길게 붙잡고 있지는 않았지만 기억에 남는 몇 구절이 있어서 옮겨 놓았다. 원균에 대한 기록이다.

술을 두어 순 배 돌리자, 영남 우수사 원균이 나타나서 술을 함부로 마시고 못 할 말이 없으니, 배 안의 모든 장별들이 분개하지 않는 이가 없다. (계사년 5월 14일)

제사 음식을 대접하는데, 경상 우수사 원균이 술을 먹겠다고 하기에 조금 주었더니, 잔뜩 취해 망발하며 음흉하고도 도리에 어긋난 말을 하는 것이 해괴하기도 하다. (계사년 8월 26일)

맑다. 경상 우수사 원균이 오다. 음흉하고 간사한 말을 많이 내뱉으니 몹시도 해괴하다. (계사년 8월 28일)

술 열 잔을 마시니 취해 미친 말을 많이 하다. 우습다. (갑오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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