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게 없어요.

Pooongkyung 2009. 10. 26. 00:29

기가 막힌다.

부대에 내려오는 길에 청운콜밴 아저씨에게 대리기사 이야기를 들었다. 작정해서 들은 것은 아니고, 콜밴에서 누가 내리길래 이 늦은 시간에 어떤 손님이냐고 자연스럽게 묻는 과정에서 들은 것이다. 그는 대전에서 온 콜밴 기사로 청원에서 청주로 가는 길목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고 한다. 청운콜밴 아저씨는 나를 태우러 나오는 길에 그를 보고 한눈에 콜밴 기사로 알고 태웠다는 거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있드라고."

시내를 운전하는 대리기사는 8000원을 받는다. 이 중에서 2500원은 콜센터로 돌아간다. 그리고 대리기사센터나 다음 대리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 일명 픽업차를 탄다. 픽업차에는 통상 2~3000원을 줘야 한다. 결국 대리기사의 손에 남는 것은 건당 3,4000원이다. 대리기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이들은 돈을 많이 준다는 말에 혹해서 대도시에서 첩첩산중까지 차를 몰기도 한단다. 하루에 두번인가 버스가 지나는 산골에 내린 채, 5만원인가를 손에 쥐고 아침이 올 때까지 오들오들 떨고 있는 초심자도 있다. 새벽까지 일하는 대리기사들은 하루 평균 5만원을 손에 쥔다. 경쟁이 치열해진데다, 평일에는 벌이가 주말에 비해 훨씬 못해 그 아래로 벌기 일수란다.

사실 대리기사는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노동시장이다.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택시 운전기사는 고용계약 등 복잡한 절차가 있는데 반해, 대리기사는 간단한 등록절차만 밟으면 된다. 노동시장의 가장 아랫물에서, 사람들은 대리기사로 모이고 있다.

따라서 범죄의 위험이 상존한다. 만취한 채 무방비인 차주인은 범죄의 유혹을 강하게 풍긴다. 서비스가 좋을 리가 없다. 졸리고 피곤한데다 따지고 보면 남는 것도 없는데, 빨리 이 생활을 청산하고 그럴듯한 일자리를 얻어야 하는데, 뒷자리의 손님의 주정을 곱게 받아주기만 하겠는가.

나는 또, 그렇게 새벽같이 대리를 뛰고 아침이 되면 '오후의 직장'으로 출근하는 이의 이야기를 듣고 정말이지 울어버릴 뻔 했다. 캄보디아에 갔을 때, 앙코르와트에서 나의 한국어 가이드였던 이는 오후 내내 나를 가이드하고 저녁에는 기독교단체인가에서 하는 한국어 교실을 다니고 늦은 밤에는 공항에서 졸린 눈을 쓱쓱 비벼가며 경비를 섰다. 그는 하루에 세시간인가를 겨우 잔다고 고백했었다. 그 얘기를 들은 날은, 앙코르와트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새벽같이 숙소에서 나선 길이었다. 그는 옷만 갈아 입고 막 왔노라고 했다. 그는 웃었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그는 아직 여기에 있다. 그는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차에서 막 내린 참이다. 나는 웃어가며, 이런 이야기를 도저히 꺼낼 수 없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