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라는 인간에게 있어 최초의 기억을 꼽으라면.
7살때까지 살던 전농동 붉은 대문집 앞에서,
세살인지 네살인지 모를 어린 내가 혼자 쭈그려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장면이 떠오른다.
거미줄 같은 골목길 끄트머리에 있는 붉은 대문 집은 작고 아담한 한옥집이었다.
평수야 마당까지 합쳐봐야 고작 40평은 되었겠냐만은,
ㄴ자 구조에 부엌과 안방, 마루에 마당까지 갖춘 오밀조밀한 한옥집.
그림이 많았던 전래동화전집과 벌레가 유난히 많았던 대추나무가 있는,
어렴풋하고 아름아름한, 내 외할머니 외삼촌 살다 가신 그 집.
안에서 나무 판자를 걸어 대문을 닫았던,
어른이 마음만 먹으면 대문보다도 낮은 담장을 넘어 수이 들어갈 수 있는 그 집.
그 집 앞에서 어린 나는 쭈그리고 앉아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렸던 것이다.
그저 모호하게도,
내 최초의 기억은 그냥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다.
놀다 온 길이었나. 땀에 젖어 있었나.
안에 사람 있냐고 소리는 질러 보았나.
춥지는 않았나. 여름이었나.
아,
그리고,
도대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나.
잘 들어는 갔나.
그런 구체적인 기억은 없이,
그냥 마냥 기다린 기억만.
물론 나는 이것이 원판 그대로의 기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솔직히,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기억하고 싶은대로 어딘가 뜯겨지고, 덧대어진 기억이겠거니.
그래서 그냥 담담하게,
나의 과거는 꽤나 쓸쓸했구나. 또는,
나는 나의 유년을 그렇게 기억하고 싶은게로구나 할 따름이다.
그래서 가끔씩 바닥 끝까지 내려갈 때면,
이 기억을 만나고,
어쩌면 처음부터 나는 혼자였을 거라고,
그래서 아직은 괜찮은 거라고.
다 괜찮다고.
어떤 아이가 속삭이는 것을 듣는다.
이건 뭐 중2도 아니고 여전히 이런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그것을 때론 삶을 지탱하는 연료로 쓴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제발로 찾아오는 기억을 나는 어쩔 수가 없다.
어리고 여리고, 자폐적이기까지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혼자 있는 그 아이를 미워할 수가 없다.
엄마 뱃속에서 처음 나와 허공을 향해 자그마한 두 손을 주억거리던,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진심으로 동정하고 그 광기를 어린 나이에 온전히 받아내었던,
동생을 결코 미워할 수가 없듯이.
결국 나는 상처입은 인간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상처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되었으며,
동시에 타인을 보듬고 가능하면 그에게 여윈 손이라도 내밀려는 소통의 방식이 되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쓰고 싶었던 걸까.
이렇게 여기에 서투르게나마 적어 두는 것이 누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때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어 주었더라면,
정말 달라지긴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