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과 자만심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유광수 선생님이 가로되,
"자만심은 예전에 '했던 것'에 대한 것이고,
자신감은 지금 '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나는 넥스터스를 '했'었다.
사회적기업이라는, 2006년 당시 정신적인 볼모지에 겁없이 발을 내딛었다.
혼자였다면 돌아갔을 길을 상엽, 종익, 동언이와 같은 멋진 친구들로 인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즐거이 걸을 수 있었다. 
인도의 사회적기업을 해부하겠다는 꿈을 꿨고, 그것을 기획서로 옮겼고, 
평소에는 만지지도 못할 돈을 펀딩 받아 인도로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록 출판은 미뤄졌지만, (언제까지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인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책도 썼다.

덕분에 이 바닥에서는 뭐라도 이룬 사람으로 여겨졌고,
나도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2007년 이 맘때쯤, 나의 자신감의 원천은 명백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2008년 10월의 나는, 넥스터스를 '하'는 내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넥스터스를 '했'던 나다.

그래서 그것이 영 불편하다.
낡은 훈장처럼 고집스레 달려 있는 그것이 불편하다.
나를 이것저것 했던 사람으로 소개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지난 몇 개월 동안 경험해보고서야 알겠다.
아니, 짐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짐작보다 더 부끄럽다. 보통 낯짝이 아니고서야,
허명을 달고 있는 것은 여간 무거운 일이 아니다.

과거는 오늘 나의 행적으로 인해서 빛나는 것이지,
과거가 오늘의 나를 비춰주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난 영광에 의지하는 자를 우리는,
노인이라고 부른다. 청년과 노인의 경계는 결코 나이가 아님을,
88만원 세대로 스스로를 자조하는 대학 취업준비생과,
세상에 바꿔야 할 것이 많아 즐겁다는 박원순 변호사를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그에 비추면, 나는 슬금슬금 노인의 길을 굴러가려고 하는 것이다.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스로 과거에 박제되려 하다니.
(물론 이상한 일은 아닐 수 있다. 과거에 영원히 박제되길 바라는 이도 있으니까.)


했던 사람이 아닌, 언제까지나 나는 하는 사람이고 싶다.
하고 있는 그것이 무엇이 되든지 그렇다. 누구와 함께든지 그렇다.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뛰는 모든 활동가들이 존경스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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