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드나드는 사나이] 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고 시작한 프로젝트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적어두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지난 2008년 9월에 벽을 드나드는 사나이를 모티브로 한 단편소설을 기획했다. 대강의 스토리를 생각하고 등장인물을 상상할 때까지는 좋았다. 같은 내용의 꿈을 꾼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 때 (나는 시간을 돌려 그 때로 돌아가 노트북 전원을 꺼버리고 싶다) 갑자기 나는 블로그에 이 '신나기 그지없는' 단편소설 제작과정을 올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그 이후로 벽을 드나드는 사나이를 다시 찾은 기억이 없다. 그는 잊혀졌다.   

근래 통학길을 즐겁게 해주는 스티븐 킹의 지극히 실용적인 글을 첨부한다. [벽을 드나드는 사나이]의 비극적인 결말에 적절히 교훈적인 글이기도 하다.


나는 일단 어떤 작품을 시작하면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중에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는 일이 없다. 날마다 꼬박꼬박 쓰지 않으면 마음 속에서 등장 인물들이 생기를 잃기 시작한다. 진짜 사람들이 아니라 '등장 인물' 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서술도 예리함을 잃어 둔해지고 이야기의 플롯이나 전재속도에 대한 감각도 점점 흐려진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의 흥분이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집필 작업이 '노동' 처럼 느껴지는데,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그것은 죽음의 입맞춤과도 같다. 가장 바람직한 글쓰기는 영감이 가득한 일종의 놀이이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나도 냉정한 태도로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방법은 도저히 손댈 수 없을 만큼 뜨겁고 싱싱할 때 얼른 써버리는 것이다.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On Writing), 김영사)


AND


"어떤 이야기를 쓸 때는 자신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원고를 고칠 때는 그 이야기와 무관한 것들을 찾아 없애는 것이 제일 중요해."

내가 처음으로 두 건의 기사를 제출하던 그날, 굴드 (지방지 기자) 는 뜻밖에도 흥미로운 조언을 해주었다. 글을 쓸 때는 문을 닫을 것, 글을 고칠 때는 문을 열어둘 것. 다시 말해서 처음에는 나 자신만을 위한 글이지만 곧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는 뜻이었다. 일단 자기가 할 이야기의 내용을 알고 그것을 올바르게 - 어쨌든 자기 능력껏 올바르게 - 써놓으면 그때부터는 읽는 사람의 몫이다. 비판도 그들의 몫이다. 그리고 작가가 대단히 운좋은 사랑이라면 (이것은 존 굴드가 아니라 나의 생각이지만 아마 굴드도 이렇게 믿었을 것이다) 그의 글을 비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보다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On Writing), 김영사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