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E.

TeatreToniC 2011. 5. 2. 23:14

일과를 마치고 아이들과 함께 빈 학과장에서 WALL-E를 봤다. 한글로 어떻게 표기해야 할지 난감한 이 영화의 제목은 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풀어서 해석하자면 Waste Allocation Load Lifter Earth-Class, 지구폐기물 수거 로봇? 정도가 되겠다. 쓰레기로 뒤덮인 지구에 홀로 남아, 그야말로 수백년 동안 쓰레기들을 모으고, 모은 쓰레기들을 마천루 높이로 쌓고, 개중에 쓸만한 것들은 자기의 보금자리에 수집하는 외로운 청소로봇이다.

단조로운 그의 일상에 식물 수집 로봇 이브가 나타나고, 월이가 첫눈에 사랑에 빠지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브를 따라, 700년 전 지구를 떠나 퇴화된 인간들이 거주하는 거대한 액시엄 우주선까지 이르는 월이의 천방지축 여정. 로봇 이야기답지 않게 정답고, 귀엽고, 동화적이다.

비록 SF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상 이 영화의 본질은 사랑 이야기다. 영화 곳곳에서 전통적인 사랑의 은유를 찾을 수 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당신과의 손잡음'이다. 1시간 30분에 이르는 상영시간동안, 어쩌면 이 영화는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에게 있어 처음 손잡음의 설레임과 열띤 흥분을 그려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손잡음은 연인들의 가장 단순한 행위이지만, 이후에 올 수많은 사랑들을 예고하는 것이고, 준비하게 하는 것이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고, 붙잡으려고 하는 것이니까.

나는 사랑하는 이의 손을 어떻게 잡아왔나. 내가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 그 무렵, 사랑에 영 서툴었던 내게 가장 난감한 문제는 언제 어디서 처음 그 사람의 손을 잡는가였다. 마치 손을 잡는 것쯤은 우리에겐 사소한 일인것처럼, 무심코 가만히 잡는 것이 좋을까. 아무래도 부끄러우니까 새끼손가락만 잡을까, 뭐, 대충 그런. 멀리서 돌이켜보면 웃음만 나오는데, 당시에는 꽤나 진지했고, 또 얼마나 설레였는지. 결국 나는 고민만 하고, 그 사람이 먼저 내 손을 덥석 잡은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는데. 잡은 그 사람의 손은 생각보다 작고, 차가웠으나, 내손엔 꼭 맞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의 손은, 사랑의 시작에서나 끝에서나 본질적인 매개물임에 틀림 없다.

그건 참 설레는 일이었던 것 같다. 당연했었던 그래서 사소했던 많은 것들은, 사실은. 그것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게, 반드시 반복적이고 그래서 서글픈 일만은 아닌 것 같아. 그건 참 설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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