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론.

BookToniC 2011. 5. 10. 22:38

사실 무엇인가를 후회한다는 것은, 혹은 무엇인가를 아쉬워한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사실 지금-여기 현실에 대해서 결핍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보다 더 나은 현실을 욕망하는 것이다. 지금-여기보다 더 나은 현실을 욕망하기 때문에 지금-여기의 현실의 무언가가 결핍된 듯이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무엇인가를 후회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아쉬워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힘이 잉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어서, 후회와 아쉬움은, 욕망과 희망의 첫 느낌일 뿐 절망할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망상까지 해보았다.

이 막막한 우주에서, 이 엄청난 인구수 중에서, 나라는 미약한 존재는 없어도 되는 개체이지만 그러나 없어도 되는 허무한 존재가 아니라, 없어도 되는데 생겨난 '잉여'에서 오는 자유로운 존재임을, 어떤 책임이 부여되기보다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자유로운 존재임을, 마치 자식 많은 집의 없어도 되는 막내자식처럼 어쩌면 자기 마음껏 자기를 찾아가는 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의무가 아닐까.

국가나 기업이나 제도, 관습이나 이념이, 그리고 무엇보다 천민자본의 논리가 우리를 뭔가 '결핍'된 존재로 여기고 우리를 관리하고 규율하려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 우주의 남아도는 '잉여'로서 존재하기에 자기 멋대로 살아도 되는, 자기 멋대로 살아야만 즐거운, 이 우주의, 저 안드로메다의, 막내공주와 막내왕자들이 아닐까.

- 이만교, 글쓰기 공작소, 그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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