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브륀, 내 이름을 기억하는가?"
"그럼요. 영주님의 이름을 기억하고말고요. 영주님이 알고 계신 여자분들은 자기 은인의 이름을 잊어버리나 보군요."
"내 이름이 뭐지?" 영주가 물었다.
"내 혀가 그 이름을 가져올 동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내 입이 그 이름을 발음할 동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어서 이름을 말하라." 영주가 큰 소리로 채근했다.
콜브륀이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대답했다.
"아이드비크 드 엘이 당신의 이름이지요."
그러자 영주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천지가 캄캄해졌다. 모든 게 꺼졌다. 지금 내가 말을 함으로써 꺼버린 이 촛불처럼.
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빛을 끈다.
어둠 속을 내닫는 말발굽 소리만 들렸다.
- 파스칼 키냐르/송의경 옮김,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