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이름을 포함한 외국의 고유명사를 원음에 가깝게 부르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추세여서, 불란서가 프랑스에 맞서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 말이 쉬이 없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불란서라는 말은 한국어의 어휘목록에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어, 불문학, 불한사전, 한불사전 같은 말들과 단단히 묶여 있기 때문이다. 불어나 불문학이나 불한사전이나 한불사전이라는 말이 사라지기 전에는, 불란서라는 말도 근근히 그 명맥을 유지해 나갈 것이다.

-"佛蘭西, 法蘭西, 프랑스" in <감염된 언어>, 고종석, 개마고원

이 문단이 튀어나온 맥락은, 좁은 의미의 외국어 표기 원음주의를 비판하는 과정에서였다. 저자는 엘리트적이어서 폭력적인 외국어 표기 원음주의를 비판하고, 기존의 대중적이고 관습적인 외국어 표현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말들의 풍경'이 침해당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이 문장들을 읽으며 감동을 먹었다. 원래 맥락과는 또 별개로, 문장들이 빚어내는 풍경이 꽤나 아름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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