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대한 시인의 과민한 감각에 더러 마음이 서늘해지는 것도 [Love Adagio]를 읽는 재미 가운데 하나다. 명사를 의태어로, 부사적으로 사용하면서 이를 다시 비틀어 걸음의 통통 튀는 느낌을 자아내는 "발. 발, 발, 밤, 밤, 밤"(빨리 걷다) 같은 표현이나, 보이지 않는 것을 또렷이 보게 만드는 "칠월이 가고 팔월이 온다. 여름이 두 다리를 벌리고 굴뚝 위에 올라앉는다."(침묵의 뿌리) 같은 표현 앞에서 내 마음은 서늘하다. 이런 대목들은 [Love Adagio]에 출렁이는 시인의 능변이 겉보기와 달리 세심히 조율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낳는다. 그렇다면 박상순은 조각가가 끌로 돌을 쪼듯 언어로 제 뇌를 쪼아 이 낯선 세계를 조각해낸 것이다. 그는 세계를 재현하지 않고 세계를 설계했다. 창세기의 신神처럼. 과연 새로운 세계다. 아스라한 환幻의 세계, 아슬아슬한 헛것의 세계.

- 고종석, 모국어의 속살,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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