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거리.

MusicToniC 2011. 5. 21. 06:24



최근 언론에서 무명가수로 주목받은 강지민의 비오는 거리.

무명가수라는 타이틀이 웃기다. 이름 없는 가수가 어디 있는가. 시인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때를 기다리는 씨앗에 불과하다. 철저한 암흑 속에서, 그 누군가의 간절한 음성으로 인해, 우리는 머뭇머뭇 어둠을 뚫고 숨겨온 단단한 향기와 빛깔을 조심스럽게 드러내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모두가 무명이며, 또한 언제까지나 무명일 수는 없다. 

대학 신입생 때 잠깐 몸을 담았던 늘푸른소리는 민중가요 동아리였다. 연희관 중앙계단 아래 빈 공간에 자리잡은 동아리방엔 담배연기에 누렇게 쩔은 벽하며 빛바랜 민중가요 악보집이 군데군데, 그들의 삶이자 무기였던 통기타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아늑하지만도 않았지만, 낯설지만도 않았던.

내 발로 그곳을 걸어나오기 직전에는, 동아리에선 현장 논쟁이 한창이었다. 우리는 노동자와 빈민들의 빛과 소금으로, 그들과 연대한 공연을 꺼려서는 안된다는 카랑카랑한 선배의 목소리가, 그리고 그보다는 청송대를, 연희관 앞을, 백양로 삼거리를, 그러니까 운동이 사라져 가는 거리에 다시 떠나는 날 을 열창하고 싶다던 친구의 목소리가, 차근차근 떠오른다. 무겁고 나른하고 치열하지만은 않게, 따분했던 그 날 그 때 그 곳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어느 곳에서도 현장을 느낄 수 없었으므로. 현장이라는 단어가 내게 주는 그림은, 반드시 각목을 든 시위대의 앞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막 임용된 교수의 열정 넘치는 교실만도 아니었고, 근대성을 주제로 와인을 할짝이던 학회 친구들의 앞만도 아니었다. 현장은 가까운 듯 했지만, 조금만 더 생각할라치면 온데간데 없이 멀어지는 야생고양이같은 거.

도대체 현장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이제 와 생각해보면,

현장은, 내가 사랑하는 그 이 앞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때 현장이 어디인지를 묻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는지를 묻고 답했으면 좋을 뻔 했다. 우리 자신의 목소리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였으면 좋을 뻔 했다. 우리의 사랑을 뜨겁게 노래해도 좋을 뻔 했다. 그래도 돌아오는 곳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무겁고 나른하지만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좀 더 웃고, 좀 더 슬퍼하고, 좀 더 사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비오는 날, 강지민의 노래를 들으며 백양로를 그린다. 그 때, 사랑하는 이들과 사랑할 이들이 개나리처럼 피어나던 그 때. 꽃잎이 지고 사랑도 지고 터져나오는 눈물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 때.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