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거부한다. 이데아는 현상계 밖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데아 대신 에이도스를 쓴다. 에이도스는 형상을 의미한다. 형상은 구체적 사물들의 내부에 있는 것이다. 플라톤은 위계질서에 의해서 이데아를 얼마나 모방하였는지가 문제였다. 형상은 나의 물질적인 부분과는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를 낮은 단계로 보고, 틀에 해당하는 것을 형상, 높은 것으로 본다.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질과 정신에 위계적 질서를 부여한 것이다. 형상은 나를 만들지만 내가 형상에 개입하지는 못한다. 형상은 모든 사람에게 있으니 보편적인 것이다. 형상은 보편적인 것에 한해서는 나를 나이게끔 하는 능동적인 작용의 산물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사물의 형상을 인식한다. 당시 일상에서 판타스마는 감각을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온 외부 대상의 형상이 기억으로 남아 있는 흔적이다. 판타스마는 심상, 이미지라는 의미로 쓰였다. 이런 의미의 판타스마가 중세에 라틴어 이마고 (imago) 로 번역되었고 이것이 이미지라는 말의 직접적 기원이다.  그래서 우리가 쓰는 이미지는 언제나 판타스마라는 의미다.

그런데 플라톤의 이미지는 다른 길을 통해, 본질이라는 원래 의미를 잃고, 우리 내부에 있는 ‘관념’으로 데카르트에게 전해진다. Cogito ergo sum 일 때, 내부는 idea 의 세계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외부의, 초월적 세계에 존재하는 것인 반면 데카르트는 내부에 존재하는 세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내부의 관념이 밖에 있는 세계를 그대로 포착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아까 붉은 꽃을 봤을 때, 붉음과 내부에 있는 붉음이 같은 의미가 된 것이다. 관념과 이미지는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중요!!!) 관념, 이미지, 표상은 근대에는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관념과 표상은 마음에 나타난 것이고 우리가 알 수 있는 최초의 대상으로 인식의 기초가 된다.

고대의 이데아는, 외부에 대한 실재론이었다. 근대에 오면서 의식의 세계로 바뀐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자면서, 근대 이전과 이후를 구분할 필요를 느낀다. 고대, 중세의 철학이 과학을 저해한다고 파악한 것이다. 그래서 회의의 철학을 제기한 것이다. 밖에 무엇이 있는지 없는지는, 이미지, 관념이라는 필터를 통해 들어오는 것이지 그 자체가 내게로 들어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의식의 철학은 데카르트가 관념론자가 아닌 것과는 관계없이 관념론의 기초가 된다. 실재론은 근대에서 관념론으로 바뀌는 것이다. 고대의 인식의 기초는 아이디어, 본질이고 근대 관념론의 기초도 의식이지만 본질인지는 모르는 것이다. 의식이라는 둘레를 치고 외부, 대상은 실제로 존재하는지의 문제로 바뀌었다. 이것이 유아론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바다를 건널 것인가? 철학사적으로 보면 이야기로 재미있을지는 모르지만, 인식론에 대한 문제를 남긴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관념밖에 없지만, 그런 관념을 아는 나는 의심할 수 없는 불변의 자아, 실체다.. 가 데카르트의 결론이다. 나, 혹은 이데아라는 실체를 가정한다는 점에서 플라톤과 데카르트는 같다. (어떤 측면에서 보는가에 따라 다르게 혹은 같게 묶일 수가 있다.)

이미지는 실체가 아닌 현상이다. 현상 배후에 다른 것이 있는가? 이미지는 생성의 순간적인 단면이다. 시간을 점하는 것이 기억이고, 모든 순간적인 것- 행위는- 이미지에 불과하다. 이미지는 공간축의 세계다. 공간의 철학자들은 공간을 절대화시켰다. 진짜 존재하는 것은 시간인데 이미지의 세계인 공간만이 우리에게 나타나기 때문에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많은 철학사가들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얘기한 것이다. 이것은 과학사가 아니라 철학사다. 인간의 성숙 과정인데, 철학은 이전의 것을 비판하면서 시작한다. 이미 플라톤은 카르미네데스를 비판하면서 자신을 친부살해범이라고 한다. 많은 것을 얻었지만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에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보다 진리가 중요하다는 말을 택한다. 이전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권위에 눌린 것이다. 서양 사상은 비판, 끝없는 친부살해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동양 사상은 권위를 비판하기 보다 해석을 붙이는 과정, 따라서 고전 해석이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동양 사상은 전면적인 비판이 없었다는 것이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 는 이전의 모든 철학에 대한 사형 선고다. 베르그송의 공간의 철학은 일종의 신이다. 비판은 속성상, 나중 사람이 유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중 사람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 이전 바로 이전 (이이전) 사상을 통해 이전을 비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상은 계속 발전하는 우상향의 그래프로 파악할 수 없다. 고전은 시대가 변하기 때문에 다시 재생의 가능성을 가진다. 그 시대에 종속된 것은 고전이 아니라 유행에 그친다.

2. 기억과 자기동일성 – 철학사 속의 기억

기억이 본격적으로 철학사의 중요한 테마로 등장한 것은 흄부터다. 데카르트는 완벽성이 주제다. 회의할 수 없었던 것은 내가 회의할 수 없다는 그 사실, 즉 내가 사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내가 생각하므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생각한다는 것은 순간적으로 파악된 진리다. 그렇다면 이 다음순간에도 그럴 수 있는가? 영속성을 보장해주는 진리가 아니다. 

데카르트는 자아를 실체라 했는데, 실체란 존재하기 위해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다. 정신의 본성은 사유이고 사유는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순간창조설이다. 그렇다면 영속성은 어떻게 보장하는가? 다음 순간은 어떤가? 내가 자고 있을 때에도 나는 생각하는가? (무의식일 때도 나인가라는 물음) 아니, 오직 내가 생각하고 있을 때만 나다. 여기에서 기묘하게 신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신이 보장한다는 것이다. 즉, 나는 매순간 창조된다는 순간창조설로 극복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기억이 나의 영속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기억은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다. 기억은 어떻게든 왜곡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무오류의 진리다. 그래서 자기동일성 문제에서 기억을 배재한 것이다. 이런 강박은 진리에 대한 수학적 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수학적 확실성이 불완전한 기억에 기초할 수는 없는 것이다. 플라톤은 외부의 진리, 이데아에 의지해서 오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데카르트에게, 내 의식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순간밖에 없다. 순간과 순간을 이어주는 것은 신적인 힘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수학적 확실성이 모든 것의 표본이 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신을 끌어들인 것이다. 사실 기독교적 신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론은, 언제 어디서나 같은, 불변의 보편적 진리이기 때문에 (오로지 진리를 위한 not 믿음) 신이 필요한 것이다. 진리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는 데카르트와 플라톤은 같은 줄에 있다.

일반적으로 근대철학을 대륙의 합리론과 경험론으로 나눈다. 경험론자들의 의심은 한 술 더 떴다. 섬나라에서, 무역을 업으로 하다 보면 신중하고 의심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ㅡ_) 오로지 확실한 것은 내가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본 것, 감각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것은, 수학적인, 이성만이 파악할 수 있는 진리밖에 없다는 플라톤, 데카르트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단 한순간도 같은 것이란 없다는, 원칙이 있다는 입장이 합리론의 입장이다. 경험론자들은 원칙이란 가장, 요구에 불과하며 실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감각이라고 주장한다. 기억은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이다. 즉, 내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면 나는 내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기억은 언제나 자기동일성 (identity) 과 연결되어 있다. 데카르트는 나는 의심할 수 없는 실체라고 파악했다. 본질적으로 데카르트는 진리가 의심하지 않다는 점에서 낙관론자다. 그래서 방법론적 회의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경험론자들은 진리란 없다,고 얘기한다. 감각은 불확실하지만, 감각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내가 나이기 위해서 수학적 확실성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경험론자들은 회의적이면서 겸손한 특징을 갖고 있다.

*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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