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 19) 베르그송, 시간의 이미지와 기억의 미학 (황수영)

 

01.
기억이란
주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접근.

철학에서 기억은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가. 철학에 관심이 있어야 이해하기 쉽겠다. 철학을 통해 자연과학, 학문과 소통이 되고 있음을 이해하면, 근본적인 의미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좋겠지..

 

물질과 기억을 참고할 . 물질은 이미지고 정신은 기억이다. 서양 철학적으로 물질과 정신은 대립되는, 소통하기 어려운 실체로 파악한다. 특히 근대의 데카르트부터 물질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고, 정신은 외부 세계에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실체라고 여겼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배척하는 모순적인 관계다. 개의 독립적인 실체라고까지 얘기하고 있다. 이를 이원론이라고 한다. 일원론은 정신을 강조하면 관념론, 물질을 강조하면 유물론이다. 데카르트는 둘을 인정을 하고, 물질과 정신은 어떻게 소통하는가를 데카르트 철학의 중심적인 문제로 둔다. 소통을 해야 하는가. 그러나 인간은 정신과 물질이 실체 안에 동시에 녹아 들어가 있다. 경험으로 가지가 소통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원론 철학에서는 원론적으로 설명할 없다. 송과선으로 설명하기도 했으나 생리학적으로 비판을 받고, 애초에 분리된 실체라는 전제에서부터 소통을 이끌어내는 무리라는 비판이 있었다.

 

19c 중반부터 실험생리학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때부터 과학적으로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문제삼기 시작한다. 유물론, 정신이라는 것은 조금 복잡한 뇌의 분자운동에 불과하다는 입장이 증명이 불가하다는 이유로 결정적인 이유가 되지 않았다. (형이상학 : 증명이 되지 않는 철학적 입장) 이는 자연과학에 의해 결정적으로 반박이 되기 시작했다. 브로카는 신경외과 의사다. 전까지 정확히 뇌의 기능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르보르니라는 환자가 브로카를 찾아왔다. 말은 알아듣는데, 땅이라는 말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해부해보니까 좌측 전두엽의 손실을 확인했다. 좌뇌 앞부분에 언어중추가 있다는 가설을 세웠고, 몇몇 사례들로 올바른 가설로 받아들여졌다. (브로카 실어증) 베르니케에게는 말은 하는데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정반대의 환자가 찾아왔다. 물론 여기에서 말을 한다는 것은 기계적인 말이다.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은 긴밀한 상호 작용이기 때문이다. 역시 해부해서 확인해보니 좌측 전두엽 , 측두엽이 손상되었다. (베르니케 실어증) 다음부터 뇌의 특정 부분이 특정 기능을 담당한다는 가설이 통용되게 되었다. 머리를 200부분으로 나눠서 뇌지도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일종의 결정론이자 유물론이 확립되었다. 이런 입장을 [대뇌 국재화 이론]이라고 한다. [Localization cerebrale] 과연 증명이 되었는가? 물론 시작은 관찰에서 시작하지만, 과학의 논리적 단점은 모든 것을 관찰할 없다는 것이다. 어떤 것은 맞고 어떤 것은 틀리고, 시간이나 상황에 따라 다른 기능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X Y 주장하는 것은 힘들다. 일련의 확인된 경험들로 인해 가설이 믿음이 되고 이론으로 정립되었다. 대뇌 연구의 대부분은 기억에 대한 연구들에 의해서 촉발된다. 과학 분야의 기억 연구는 때가 처음이라고 보면 된다.

 

19c 베르그송은 당시 맹위를 떨쳤던 과학- 심리학, 생리학, 진화론 근본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당시 과학에 민감하게 반응한 철학자다. 베르그송은 과학에 호의적이지만, 과학자의 자생적 형의상학 (과학자 사회, 시대적 전제에서 시작) 대해서는 비판을 한다. 만약 전제가 틀렸을 경우엔 결국 틀렸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전제를 반성하는 것이 철학이니까.. 심리학적으로는 강박에 가까운 자기반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 철학이므로, 과학자들의 연구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베르그송은 6년동안 심리학, 생리학에 대해 공부를 하고 검토하고 철학적 입장에서 비판을 한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물질과 기억은 시간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분석이다. 물질은 이미지고 정신은 기억이다. 

 

기억은 서구 철학 전체에 대한 도전이다. 베르그송 전에는 니체가 있었다. 니체는 고정된 실체나 본질을 주장하는 철학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었다. 프랑스에는 니체가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베르그송은 독자적으로 고정된 기억을 뒤집는 작업을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시간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다. 

 

1. 이미지 개념의 변천

우리 인간 밖에서 자연을 좌지우지하는 불변의 절대적 원리는 가정하는 철학을 초월성의 철학이라고 한다. 그것을 베르그송은 공간에 귀속시킨다. 공간은 변화하지 않는 , 기본 바탕과 같은 것이다. 철학은 우리가 정신적으로 안주할 초월적 원리를 가정하고 시작했다는 관점이다. , 이데아, 데카르트의 실체와 관련된 불변부동의 원리를 공간 차원에서 정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실재 (reality) 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재는 시각 차원에서 성립한다. 때까지 존재했던 모든 형이상학을 공간 차원에서만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 정말로 존재하는 것은 시간이다. 그렇다면 시간의 존재론은 무엇일까..? 베르그송의 직접 주어진 것들에 대한 시론, 창조적 진화 까지 관통하는 주제 시간이다. 물질과 기억은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베르그송 존재하는 것들 전체를 이미지 부른다. 배후에 어떤 실체도 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간 차원의 철학과 차이가 있다. 대신에 이미지는 지속과 생성의 단면이다. 이미지 배후에 지속이 있다, 이데아가 있다는 것은 틀린 것이다. 지속, 시간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가 이어져 있다는 의미다. 이미지는 순간적으로 짜르고, 쪼갠 것이다. 이미지는 환상이 아니고 실재의 일부, 단면이라는 주장이다. 이미지는 환상과 비슷한 함축적 의미를 가져서, 실재가 아닌, 헛것으로 통용되는 공간의 철학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탈레스는 만물은 물이다, 했다. 의미는 현상중의 하나인 물이라는 아니라, 우리의 배후엔 하나의 원리가 있다는 의도를 갖는 것이다. 배후에 실체가 있다는 - 철학은 현상을 부정하므로 출발부터 이원론이 있다. 그것이 자연과학의 정신이기도 하다.

 

베르그송은 시간과 기억을 구분한다. 기억은 주체가 있기 때문이다. , , 모든 생명체들은 기억을 갖고 있다. 생명의 존재 자체가 기억을 갖고 있다. 시간이 없다면, 성장은 불가능하다. 어떤 사건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 기억이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노화되고 죽을 때까지의 시간이 바로 기억이다. 살아있는 것에 대해서만 기억을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기억을 통해 자신을 지탱하고 있다고 말할 있다. 자기가 차지한 시간이 자신의 기억이고 기억이 자신이다. 따라서 정의상, 기억의 일부가 물리적으로 상실되면 그것은 이상 과거의 자신이 아니다. 따라서 기억은 본질이며, 이데아이며, 실체다. (기억은 자기동일성을 같는주체와 동일한 의미?) 만약 기억이 이데아라고 ,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붉음의 이데아는 불가침 영역에 있다. 세계는 분리되어 있으므로, 플라톤은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를 이미지의 세계라고 한다. 본질과 그것의 나타남을 현시라고 한다. 본질과 현시의 세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베르그송의 이미지는 어떤 것의 모방이 아니다. 존재하는 것은 이미지지만, 이미지의 시간에서의 축적인 기억은 바로 본질이다. 따라서 본질은 초월적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내재한 것이다. 초월성의 철학을 극복하고 내부성의 철학으로 돌아간 것이다. (들뢰즈의 철학) -> 철학사적 의미

 

1. 이미지 개념의 변천

실체와 관념의 중간이 이미지, 중립적 용어를 채택했다. 그러나 전통철학에서는 어색하고 홀대를 받는 용어였다. 부분이 물질과 기억 (1896) 1장인데, 주목 받지 못했고 2, 3번째 책이 각광을 받았다.

 

이해를 위해 철학사를 보자. 플라톤은 원본과 모상의 세계를 구분한다. 티마이오스와 데미우르고스 신화는 이데아의 세계를 모방해서 현상계를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데미우르고스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 장인이라는 의미다. 만든다고 하는 것은, 지적인 계획-청사진과 재료가 있어서 청사진에 따라 세계를 조립한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합리적인 구조를 전제한다. 비합리적인 일은 일어날까? 비합리적이고 유동적인 혼돈의 세계는 본질이 아니다. 모상은 다시 에이콘과 판타스마로 나뉜다. 에이콘 아이콘의 원형으로 복사물 의미한다. 판타스마 복사물을 복사한 , 시뮬라크르.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를 모방하는 것이 있고 질서가 없는 종류가 있다고 주장하고, 가지를 올바르게 구분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기하학 에이콘을 가장 보여준다고 믿었다. 지금 시각으로는 수리물리학이다. 인문학은 진리를 모방하기 보다, 자기 멋대로 발전하는 것으로 홀대할 수밖에 없었다. 

* 연결

md / 01 / 02 /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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