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2

우리는 역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식의 정원에서 소일

하는 무위도식자들이 역사를 필요로 하는 것과는 달리 역사를 필

요로 한다. - 니체, [삶을 위한 역사의 유용성와 단점]

 

역사적 인식의 주체는 투쟁하는 피지배계급 자신이다. 마르크스에

있어서는 이 계급은 패배한 세대의 이름으로 해방의 과업을 마지

막까지 수행하는 억압받고 또 복수하는 최후의 계급으로 등장한

. 스파르타쿠스에서 다시 한번 잠깐 나타났던 이러한 의식을 사

회민주주의자들은 언제나 혐오하였다. 30여년이 경과하는 동안 그

들은, 지난 세기를 규합하고 뒤흔들었던 블랑키와 같은 목소리와

이름을 말살하는 데 성공하였다. 사회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에 다

가올 미래 세대의 구원자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이에 자족하였

, 또 이로써 노동계급으로부터 그들이 지닌 가장 큰 힘의 원천

이 심줄을 잘라 버렸던 것이다. 노동계급은 이러한 훈련과정에서

곧 증오와 희생정신을 망각하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증오와 희생

정신은 해방된 손자들의 이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짓밟히고 억눌린

선조들의 이미지에 의해 자라고 북돋아지기 때문이다.

 

13

날로 우리의 목적은 더 분명해 가고 또 날로 국민들은 더 영리해

질 것이다. - 요셉 디츠겐, [사회민주주의의 철학]

 

사회민주주의 이론은 물론이고 그 실천도 한층 더 현실에 근거한

진보의 개념이 아닌 교조적 요구를 지닌 진보의 개념에 의해 규정

되어 왔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머리 속에서 그려왔던 진보는 무

엇보다도 인류 자체의 진보(인류의 기술과 지식의 진보만이 아닌)

를 의미하였다. 둘째로 그들이 생각한 진보는 아직도 완결되지 않

은 진보(인류의 무한한 완벽성의 가능성에 상응하는)를 의미하였

. 셋째로 그것은 또 근본적으로 끊임없이 발전하는 진보(직선 내

지 나선형을 그으면서 자동적으로 나아가는 진보)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속성들은 모두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또 이들 속성

각각에는 비판을 가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

, 그것이 가차없는 비판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모든 속성들의

배후를 꿰뚫어보아야 하고 또 이들 속성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데 주안점을 두지 않으면 안된다. 인류의 역사적 진보라

는 개념은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을 관통하는 역사적 발전과정이

라는 개념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진보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의 바탕은 이러한 역사적 발전과정이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이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14

근원은 목표이다. - 칼 크라우스, [운문으로 된 말들]

 

역사는 어떤 구성이나 구조물의 대상인데, 이 구조물이 설 장소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현재시간>

에 의해 충만한 시간이다. 그래서 로베스피에르에게는 고대의 로

마는 현재시간에 의해 충전되어진 과거였다. 프랑스혁명은 스스로

를 다시 태어난 로마로 이해하였다. 프랑스 혁명은 고대의 로마를,

마치 유행이 지나간 의상을 떠올리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기억

하고 회상시켰다. 유행은 무엇이 현실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낌새

채는 -그것이 아무리 지나간 과거의 덤불 속에 있더라도 -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과거를 향해 내딛는 호랑이

의 도약이다. 다만 이 도약은 지배계급이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원형경기장에서 일어나고 있을 따름이다. 역사의 자유로운 하늘에

서 펼쳐질 이와 동일한 도약이 바로 마르크스가 혁명으로 파악한

변증법적 도약인 것이다.

 

15

역사의 연속성을 폭파시키고자 하는 의식은, 행동을 개시하려는

순간의 혁명적 계급에 고유한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새로운 달

력을 도입하였다. 이 새로운 달력의 첫날은 역사의 저속도 촬영기

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기억의 날로서 국경일의 모습을 하고

언제나 다시 되돌아오는 그 날은 따지고 보면 항상 동일한 날인

것이다. 따라서 달력은 시계처럼 시간을 계산하고 있지 않다. 그것

은 백년 이래 유럽에서는 그 가장 희미한 흔적조차도 드러내지 않

았던 역사의식의 기념비이다. 이러한 역사의식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었던 것은 1848 7월혁명 동안에 일어났던 돌발적 사건에

서였다. 투쟁의 첫날밤에 파리의 여러 곳에서 상호간에 아무런 관

련도 없이 독자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시계탑에 총격이 가해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아마 시의 압운에 힘입어 그의 통찰력을

획득했다고 생각되는 이 사건의 어는 증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

. <누가 믿을 것인가? 들리는 말에 의하면 모든 시계탑 밑에 서

있던 새로운 여호수아가 마치 시간이 못마땅하기라도 하듯이 시계

판에 총을 쏘아 시간을 정지시켰다고 한다.>

 

16

역사적 유물론자는 과도기로서의 현재의 개념이 아니라 시간이 그

속에 머물러 정지상태에 이르고 있는 현재의 개념을 포기할 수 없

. 그 까닭은 이와 같은 현재의 개념에 의해서만 역사를 쓰고 있

는 현재가 정의되기 때문이다. 역사주의가 과거의 <영원한> 이미

지를 나타낸다면 역사적 유물론자는, 일회적인 과거와의 유일무이

한 경험을 보여준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과거의 영원한 이미지 따

위는 역사주의의 유곽에서 <옛날옛적>이라고 불리우는 창녀에게

정력을 탕진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맡겨버리고, 대신 그는 자신

의 힘을 스스로 제어하면서 역사의 지속성을 폭파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 남자로 계속 남아 있는 것이다.

 

17

역사주의가 보편적 세계(인류)사에서 그 정점을 이루는 것은 당연

하다고 할 수 있다. 유물론적 역사서술은 방법론적으로, 어떠한 다

른 종류의 역사보다는 바로 이러한 보편사와 비교해 보면 아마 가

장 명확히 구별될 것이다. 보편적 세계사는 아무런 이론적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 보편사의 방법론은 첨가적이다. 그것은 동질적

이고 공허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사실의 더미를 모으는 데 급급

하다. 유물론적 역사서술은 이와는 반대로 하나의 구성원칙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사고에는 생각의 흐름만이 아니라 생각의 정지

도 포함된다. 사고는, 그것이 긴장으로 충만된 사실의 배열 속에서

갑자기 정지하는 그 순간에 그 사실의 배열에 충격을 가하게 되고

또 이를 통해 사고는 하나의 단자로서 결정화된다. 역사적 유물론

자는, 그가 단자로서 마주 대하는 역사적 대상에만 오로지 접근한

. 이러한 단자의 구조 속에서 그는 사건의 메시아적 정지의 표

, 달리 말해 억압된 과거를 위한 투쟁에서 나타나는 혁명적 기

회의 신호를 인식한다. 그는 동질적이고 공허한 역사의 진행과정

을 폭파시켜 그로부터 하나의 특정한 시기를 끄집어내기 위해서

과거를 인지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그는 시대로부터는 하나의 특

정한 삶을, 일생의 사업으로부터는 하나의 특정한 사업을 획득하

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으로부터 얻게 되는 수확은 한 작

품 속에 필생의 업적이, 필생의 업적 속에는 한 시대가, 그리고 한

시대 속에는 전체 역사의 진행과정이 보존되고 지양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파악되어진 것의 영양이 풍부한 열매는, 귀중하지만

맛이 없는 씨앗으로서의 시간을 그 내부에 간직하고 있다.

 

18

<이 지구상의 유기적 생물체의 역사와 비교한다면 호모 사피엔스

의 보잘 것 없는 오천년 역사는 이를테면 하루의 24시간 중의 마

지막 2초와 같은 것이고 또 이러한 기준으로 두고 보면 문명화된

인류의 역사는 기껏해야 하루의 마지막 시간의 마지막 초의 5/1

지나지 않는다.>라고 어느 현재의 생물학자는 말한 바 있다. 메시

아적 현재시간의 모델로서 전 인류역사를 엄청나게 축소해서 포괄

하고 있는 현재시간은 우주 속에서 인류의 역사가 만든 바로 그

형상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附記

 

A

역사주의는 역사의 여러 상이한 계기 사이의 인과관계를 정립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사실도 그것이 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해서 역사적 사건이 되는 법은 없다. 원인으로서의 사

실은, 수천년이라는 시간에 의해 그 사실과는 동떨어져 있을 수도

있는 사건들을 통해서 추후에 역사적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

제에서 출발하는 역사가는 사건들의 계기를 마치 염주를 하나 하

나 세듯 차례차례로 이야기하는 것을 중지하고 그 대신 그가 살고

있는 자신의 시대가 지나간 어느 특정한 시대와 관련을 맺게 되는

상황의 배치와 파악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메시아적 시간의 단편

들로 점철된 <현재시간>으로서의 현재라는 개념을 정립하게 되는

것이다.

 

B

시간으로부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했던

점술가들은 확실히 시간을 동질적 시간으로도 또 공허한 시간으로

도 체험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어

쩌면 과거의 시간이 어떻게 기억을 통하여 체험되어졌던가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지하다시피 유대인에게는 미래를 연구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유대인의 경전인 토라와 그들의 기도는 이와는

반대로 기억을 통하여 미래가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이러한 기억은 유대인들로부터, 점성가들에게서 가르침을 얻으려

는 사람들이 빠져들었던 마력적 힘을 박탈하였다. 하지만 그렇다

고 해서 유대인에겐 그로 인해 미래가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미래 속에서는 매초 매초

가 언제라도 메시아가 들어올 수 있었던 조그만 문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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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넷 링크 (http://go.jinbo.net/commune/view.php?board=marx-7&id=25&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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